입력 : 2008.05.07 22:59
연주의 순간이 곧바로 창작이 되는 재즈 음악과는 달리, 클래식 음악에서 즉흥성은 이른바 '엉덩이 꼬리뼈' 같은 존재입니다. 부단한 퇴화를 거쳐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있는 것이지요. 악보 사이에 여백이 많은 바로크 음악이나, 즉흥성을 또 다른 실험 대상으로 삼는 현대 음악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클래식 음악에서는 작곡가가 적어놓은 음표를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미덕으로 정착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꼬리뼈가 가끔씩 통증으로 우리에게 존재감을 알리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에서 퇴화된 것처럼 보였던 즉흥성이 불쑥 되살아나는 순간도 있습니다. 카덴차(cadenza)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피아노 협주곡의 주로 1악장에서 갑자기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멈추고 독주자만 바라보는 순간이 있지요. 이때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는 오로지 관객만 바라보며 독주(獨奏)를 통해 화려한 기교를 과시합니다. 이처럼 악장이 절정에 이를 때 독주자가 홀로 연주하는 대목을 카덴차라고 부릅니다.
당초 카덴차는 오페라 아리아에서 가수들이 즉흥적으로 꾸며 부르는 소절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점차 기악 분야로 쓰임새가 확장됐습니다. 작품이나 악단의 규모가 모두 확대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 카덴차에도 작곡가나 당대의 유명 연주자들이 일일이 써놓은 버전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꼬리뼈가 가끔씩 통증으로 우리에게 존재감을 알리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에서 퇴화된 것처럼 보였던 즉흥성이 불쑥 되살아나는 순간도 있습니다. 카덴차(cadenza)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피아노 협주곡의 주로 1악장에서 갑자기 모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멈추고 독주자만 바라보는 순간이 있지요. 이때 바이올리니스트나 피아니스트는 오로지 관객만 바라보며 독주(獨奏)를 통해 화려한 기교를 과시합니다. 이처럼 악장이 절정에 이를 때 독주자가 홀로 연주하는 대목을 카덴차라고 부릅니다.
당초 카덴차는 오페라 아리아에서 가수들이 즉흥적으로 꾸며 부르는 소절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점차 기악 분야로 쓰임새가 확장됐습니다. 작품이나 악단의 규모가 모두 확대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면, 카덴차에도 작곡가나 당대의 유명 연주자들이 일일이 써놓은 버전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영국의 '악동'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Kennedy)가 최근 카덴차를 주제로 흥미로운 실험을 벌였습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을 녹음(EMI)하면서 1~3악장에 모두 자신이 직접 카덴차를 써넣은 것이지요. 이 음반에서 지극히 예외적인 건 카덴차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카덴차에 쓰인 악기입니다.
말끔한 연미복과 구두 대신 펑크 복장과 군화 차림으로 비발디와 바흐를 연주했던 이 악동이 이번엔 모차르트 협주곡의 카덴차를 전자 바이올린으로 녹음해버렸습니다. 이 같은 파격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다가 절정 대목에서 갑자기 재즈가 튀어나오는 것 같은 효과를 빚어냅니다.
실제 케네디는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들면서 재즈 밴드와는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지요. 그는 "내 해석은 전적으로 '오늘날'이라는 시간대에 속하는 것이다. 만약 올바른 방법으로 연주하고 보여줄 수 있다면 모차르트도 마찬가지"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지난 25년간 모차르트를 거의 연주하지 않았던 그는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을 키우기 위해 아들의 이름에 '아마데우스'를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못 말리는' 케네디의 '못 말리는' 모차르트 음반은 클래식 음악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즉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