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불화(不和)의 희생양 됐던 여성 클라리넷 주자를 아세요?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5.07 22:56

자비네 마이어, 첫 내한공연

1982년 베를린 필하모닉. 당시 악단을 이끌고 있던 '제왕' 카라얀은 불과 23세의 여성 클라리넷 연주자 자비네 마이어(Meyer·사진)를 입단시켰다.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어났다. 단원들은 그녀의 짙은 음색을 문제 삼았다고 하지만, 실은 성차별적 요소가 깔려 있었다. 리허설 중에 단원들은 그녀 곁에서 떨어지기 위해 의자를 옮겨 앉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결국 마이어는 9개월 만에 악단을 나와서 솔리스트로 독립했다. 하지만 지휘자 카라얀과 단원들 사이가 틀어지며 불길이 번졌다. 카라얀은 잘츠부르크 성령강림절 축제에 전통적으로 등장했던 베를린 필을 빼놓고 대신 빈 필하모닉을 불렀다. 베를린 필 단원들은 카라얀의 종신 지휘자 지위를 다시 고려해보겠다며 맞섰다.

마이어는 26년이 흐른 지금도 당시 일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분명 음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전의 일이고 이제는 역사에 속하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긴 힘들다"고 했다. 이후 마이어는 옛 친정인 베를린 필과 수차례 협연 및 녹음을 한 정상급 클라리넷 연주자로 성장했다.

베를린 필에 폭풍을 몰고 왔던 그녀가 온다. 다음달 1·2일 서울시향과 협연하기 위해 첫 내한하는 것이다.
다음달 첫 내한하는 여성 클라리넷 연주자 자비네 마이어. 불과 23세에 베를린 필에 입단했지만 9개월 만에 악단을 떠나며 화제를 불러모았다./스테이지원 제공

마이어는 4대에 걸친 '클라리넷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 적부터 클라리넷은 우리 집안의 오랜 전통이었어요. 저도 여덟 살 때부터 작은 클라리넷으로 오빠와 함께 아버지에게 악기를 배웠죠. 지금은 제 아들도 악기를 배우고 있어요." 오빠 볼프강 마이어는 칼스루에에서 클라리넷을 가르치고 있고, 함께 내한하는 남편 라이너 벨레 역시 뤼벡에서 클라리넷 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 집에서 클라리넷을 빼놓고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셈이다. 실제 마이어는 오빠·남편과 함께 클라리넷 3중주단 '트리오 디 클라로네'를 결성하기도 했다. 마이어는 "가족과 실내악을 하면 무엇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고전파와 낭만주의, 현대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적 폭을 자랑하는 그녀의 레퍼토리에는 윤이상의 곡도 포함되어 있다. 마이어는 "루이제 린저와 윤이상의 대담을 읽기도 했고, 그의 '오보에·클라리넷·바순을 위한 목관 3중주'나 '클라리넷 5중주' 등은 대단히 환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이상의 클라리넷 5중주는 브람스의 5중주와 묶어 음반으로 펴내기도 했다.

이번 내한에서는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협연하고, 남편과 함께 크로머의 〈2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다. 그는 "아주 부드럽고 가벼우면서 무척 크고 무거운 음색까지 사람의 목소리처럼 유연성 있고 다이내믹한 것이야말로 클라리넷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자비네 마이어 내한 연주회: 6월 1·2일 세종문화회관, (02)780-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