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디바 아니 여우(女優)

  • scene PLAYBILL editor 김아형

입력 : 2008.04.30 09:35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최성희

“앞으로도 제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여성을 연기하고 싶어요. 오랜 시간 기다려온 만큼 이젠 여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맨발의 에스메랄다.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성당에서 맨발로 춤추던 아이가 가수 활동을 하면서는 늘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춰야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하이힐을 벗어보니 발이 엉망이 됐더라. 이 발이 그동안 나를 지탱해 준 거다.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처음 무대에 섰던 날 10년 간 아팠던 발이 한 순간 치유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자유로운 인간 최성희로 여러 사람과 만나게 해주는 것 같아서. 그러자 내가 아니면 누구도 이 역을 할 수 없단 생각에 어느새 에스메랄다에 동화되더라. 마치 운명처럼. 이젠 항상 맨발이다 보니 발에 상처가 많이 생겼다. 그런데도 기분은 너무 좋다. 여기 엄지발톱의 멍 보이지 않나? 영광의 상천데 평생 안 지워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이 멍을 볼 때마다 에스메랄다를 기억하고 싶으니까.


배우 최성희는 어떤 배우를 꿈꾸는가?

진실하게 연기할 것. 내가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소명이다. 무대든 브라운관이든 눈앞의 얇은 결과를 좇는 배우가 되고 싶지는 않다. 저 배우는 ‘어딜 내놔도 자기 몫을 다 하는 배우’란 소리가 듣고 싶다. 그것만이 오랫동안 수면 아래서 숨 못 쉬고 있던 나를 수면 위로 나오게 하는 방법일거다. 그래서 연기력이 많이 요구되는 역할이 탐난다. 굳이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감정의 폭발을 보여줄 수 있는... 사실 아직 안 부딪혀 본 일이 많아서 자신 할 수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렇다.


about lady

바다라는 익숙한 예명대신 최성희란 낯선 본명을 되찾아준 에스메랄다의 맨발. 그녀는 당연한 듯 맨발을 자청했다. 데뷔 10년 차, 누구나 탐내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인 그녀는 정작 그 안에 갇혀있었다. 정해진 콘셉트 안에서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기에 급급했고 느낄 새도 없이 외워서 노래해야 했던 시절, 무대에서도 매스컴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그걸 역이용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방법도 몰랐고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언젠가 다가올 운명을 믿으며 그 ‘때’를 기다렸을 뿐.


뮤지컬 '페퍼민트'로 잠시 해갈을 하는가 싶었지만 좀처럼 때는 오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시간이 허락지 않았고, 여유가 생기면 끌리는 작품이 없었다. 그러던 2007년, 기다리던 운명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와 뮤지컬 '텔미 온 어 선데이'의 데니스는 어느 쪽도 놓을 수 없는 숙명이었다. 무리인걸 알면서도 그녀는 두 작품을 모두 선택했다.


생에 처음 모노드라마를 경험했고, 체력의 한계와 싸우며 온 몸으로 에스메랄다를 흡수했다. 더 이상 카메라 앵글이나 콘셉트에 얽매이지 않아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무대는 그녀에게 가르쳐줬다. 그토록 보여주고 싶던 진짜 최성희를 꺼내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운명을 기다리게 하는 힘을 무대에서 얻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