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4.30 09:31
연극 '블랙버드'의 추상미
“제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서로 외조와 내조를 하고 있어요. 양성이 균형 잡힌 사람이 온전한 인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블랙버드'의 우나는 어떤 인물인가?
우나는 12살 때 레이라는 40대 중년의 남자를 사랑했는데, 그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 상처로 인해서 결국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그래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비현실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런 트라우마가 있지 않을까? 나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이들로부터 ‘왕따’ 당한 경험이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선생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한 아이가 나를 시샘해서, 친구들로 하여금 나를 괴롭히게 만들고 괴롭힘의 정도에 따라 상을 주곤 했다. 송충이 세례까지 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 반 친구들로부터 버림 받았던 기억이 한동안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때 기억이 지금 이 작품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연기생활이나 인생에 있어 롤모델이 있다면?
한 사람을 꼽기가 어렵다.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여성 아티스트들은 모두 나의 롤모델이다. 시몬느 보부아르, 이사도라 던컨, 조르주 상드, 최승희……. 10대에서 20대를 거치면서 여성 아티스트들의 전기는 거의 다 읽은 듯하다. 그 중에서도 꼽으라면, '가을 소나타'의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롤모델로 삼고 싶다. 오드리 햅번이나 리즈 테일러와 같은 동시대 여배우들이 피고 질 때, 잉그리드 버그만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지 않는 꽃이었으니까. 그리고 영화 '타인의 취향', '룩 앳 미'를 만들었던 프랑스 여성감독 아녜스 자우이의 세계관도 좋아한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사소하지 않은 중요함을 찾는 그런 세계관을.
about lady
추상미, 당당한 여배우. 1994년 연극 '로리타'로 데뷔한 후, 연극과 뮤지컬, 영화와 TV드라마를 종횡무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 중인 대한민국 여배우. 자신의 이름 앞에 붙는 아버지의 이름을 떨쳐버리고도 싶겠지만, 거기에 연연하지 않는 추상미는 당당하다. 그녀의 또 다른 당당은 출연작에서 찾을 수 있다. 작품성만 있다면, 그녀는 독립영화('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노개런티로 출연하기도 한다.(영화 '미소') 연기력을 비롯해 모든 게 까발려지는 무대 위에 서는 일도 그녀가 택한 당당 중 하나.
특히 이번 '블랙버드'는 그녀가 직접 선택한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배우가 선택받는 존재인데 비해, 이 작품에서 추상미는 자신이 직접 작품과 연출가를 지목했다. 영화에 작가감독이 있다면, 그녀는 배우로서 작가배우인 셈. 세월과 함께 연기력과 연륜을 더해가는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그녀 또한 작가배우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직접 연출과 감독을 겸하는 날이 오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블랙버드'의 인상적인 대사를 묻자, 그녀가 답한다. 그때, 거기서 내 생각하고 있어요? 대중은 언제 어디서든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 '블랙버드'로 또 하나의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여풍당당 추상미는 누구에게나 기억될 것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