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라는 성역(聖域)으로 성큼 들어온 그녀

  • scene PLAYBILL editor 김민주

입력 : 2008.04.30 09:28

연극 '클로져'의 홍은희

무대 위에 그녀들이 서 있다. 누구도 그녀들의 방패막이 되어 주지 않는다. 찬사도, 비난도 살갗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들은 그녀들을 주시한다. 혹자는 맨발로, 혹자는 싸늘한 말투로, 혹자는 절규로 등장한다. 온몸을 관통하는 시선들은 애초부터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유명세를 얻은 덕에 사람 가까이 가지 못하고 성벽 안에 갇혀야만 하는 연예인의 숙명이 그녀들에겐 참기 힘든 형벌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이제 사람 사이로 들어가려 한다. 무대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아름다운 공간임을 그녀들은 알고 있다. 두터운 화장을 지우고 높은 하이힐에서 내려온 그녀들이 무대로 향한다.

그 발걸음부터 이미 예술이다.

“지금껏 제 의지대로 살아왔기에 지나온 삶에 후회가 없어요. 앞으로도 그런 여성으로 계속 살고 싶어요.”


무대 연기는 처음이다. 긴장되지 않나?

그토록 바라던 무대다. 하지만 소극장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처음엔 까마득하기도 했다. 수많은 점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두려웠고 집중도 안 됐다. 그러다 문득 내 옆의 배우를 바라보게 되었다. 관객들의 시선을 염려하기보단 같은 무대에 선 배우가 날 바라보고 진실한 연기를 펼칠 거란 확신이 들자 불현듯 평온해졌다.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그린 연극 '클로져'는 배우 사이를 감도는 ‘공기’가 전체를 말해주는 작품이다. 감정처럼 날마다 변화하는 그 공기를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다.


결혼, 출산, 육아, 연기. 당신은 20대 여성으로서 참 다양한 경험을 했다.

여자로서 아기를 낳은 것. 이건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생일대의 경험이다. 벌써 6살이 된 아들 동우는 내 존재 이유를 날마다 일깨워줄 만큼 너무나 귀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내가 절대적인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일부러 엄하게 대한다. 이런 교육방법이 아들을 주체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20대 초반, 결혼을 결심했을 땐 주변에서들 많이 만류했었다. 하지만 현재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고, 내 연기 인생도 생명선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결혼이란 분명 한 개인에게 굉장한 변화 아닌가. 그 시간들을 통해 많이 성숙해졌고 나만의 독특한 분위기도 만들게 되었다. 감사히도 모든 경험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모든 경험에 만족한다.


about lady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무대’라는 곳은 그녀의 촉수를 자극시켰다. 하지만 그곳은 성역(聖域)과도 같았다. 그런데 마치 운명처럼, 연극 '클로져'가 그녀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연습은 밀도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연출가 구태환은 느낌을 주입하기보단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인간관계에서 지극히 일부만 놓고 전부를 안다고 말하진 않았냐고. 해답을 찾는 동안 그녀의 연기는 진화해갔다.


이지적이면서도 정열적인 성향의 사진작가 태희는 외로운 인물이었다. 최근 그녀는 ‘1인칭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난생 처음, 홀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런데 도쿄의 도심 속에서 홍은희는 고독이란 감정과 맞닥뜨렸다. 그 또한 난생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간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왔는지 반추하게 되었다. 3일간의 여행은 태희의 내면을 이해하는 자양분으로 고스란히 녹아내렸다.


지금껏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 몇 해 전,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며 생과 사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음을 느꼈다. 그녀는 더욱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어졌다. 연기자 생활도, 남들보다 이른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모두 홍은희가 원하던 대로였다. 이번 연극도 20대의 마지막에서 그녀가 행한 최고의 선택이라 믿는다. 이러한 도전이 그녀의 30대를 풍성하게 열어줄 것임을 그녀는 의심하지 않는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