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그녀 진공 청소기와 정을 통하다

입력 : 2008.04.16 23:24 | 수정 : 2008.04.17 08:01

실험적 작품으로 주목받는 무용수 정금형

'진공 청소기와 사랑을 나누는 여자' 정금형(28)의 연습실엔 진공 청소기 말고도 잡동사니가 많았다. 멜로디언, 가면, 장난감 배(船)…. 인형이 있는 신체극을 하는 이 아티스트는 그것들을 '물체(objet)'라고 불렀다. 최근 평생 처음으로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는 그녀는 "의사들이 내 몸 속에 긴 호스를 집어넣느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누운 채 억억거리면서도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말했다.

"내가 인형을 조종할 때보다 인형이 날 조종할 때 더 흥미를 느낍니다. 물체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새 아이디어들이 샘솟지요. 날 잠재울수록 인형이 살아나고, 작품도 좋아질 때가 많아요."

대학로가 정금형을 주목하게 한 〈진공 청소기〉도 그랬다. 정금형은 업소용 진공 청소기, 갈비집 환풍 호스, 남자 가면을 재료로 만든 이 물체(인형)와 사랑을 나눈다. 청소기 흡입구에 붙은 남자 가면은 10분 동안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더듬고, 청소기 전원이 켜질 땐 강력한 힘과 소음으로 그녀를 빨아들인다. 관객의 시선과 심리까지 집어삼킨 이 작품은 지난해 춘천마임축제에서 도깨비어워드를 수상하고 영국 초청 공연까지 다녀왔다.
신체극 <진공 청소기>에서 정금형이 춤추고 있다. 진공 청소기는 이 공연의 중요한 오브제다. /피지컬씨어터 페스티벌 제공
정금형은 15일 개막한 제3회 피지컬씨어터 페스티벌에서 《금으로 만든 인형》(17일까지)을 공연한다. 〈진공 청소기〉를 비롯해 10분 안팎의 작품 6편을 묶었다. 그녀는 "내 몸은 〈스펙터클 대서사시〉에서는 바다(파도)가 되고, 〈트리스탄〉에서는 '오징어 인간', 발에 가면을 쓰는 〈피그말리온〉에서는 '목이 긴 인간'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금으로 만든 인형》에는 오르가슴에 집착하는 6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6편 다 성(性)의 코드가 있어요. 오르가슴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에너지 같아요. 그걸 가지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고도 쓸쓸해 하는 사람도 있고…. 몸과 물체가 부딪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진공 청소기〉의 경우 흡입구가 막히는 정도에 따라 몸의 출렁임과 소음이 달라진다. 관객은 고요했다가 별안간 "부앙부앙~" 터져나오는 청소기 소리를 들으며 공연에 집중하게 된다. 대사는 한 마디도 없다. 정금형은 음악도 거의 쓰지 않는다. "내 호흡과 한숨이 더 음악적인 효과를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지컬씨어터 페스티벌은 27일까지 대학로 상명아트홀2관. 정금형의 《금으로 만든 인형》은 5월 춘천마임축제에서도 공연된다. (02)764-7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