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장짜리 카라얀 박스 세트를 아시나요

  • 김성현 기자
  • 정남이 인턴기자

입력 : 2008.04.16 23:38

클래식 CD여 안녕? ①
바흐·칼라스·푸치니 등 대가들 전집 출시 봇물

클래식 음반계에 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이름하여 '박스 폭탄'이다. 지난해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서거 30주기를 맞아 70장짜리 박스 세트가 한정판(소비자 가격 88만원)과 보급판(23만원)으로 각각 출시된 데 이어서, 카라얀 탄생 100주년인 올해는 240장(300만원), 88장(28만원), 72장(25만원) 등 서로 다른 카라얀 전집만 3종류가 발매됐다. 구입이라기보다는 '모셔놓는다', 두툼하다기보다는 항공모함처럼 '거대하다'고 해야 어울릴 정도다.

음반사 핸슬러의 바흐 칸타타 전집(172장·170만원),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80장·39만원), 톤 쿠프먼이 지휘한 바흐 칸타타 전집(67장·107만원), 모차르트 오페라 전곡 영상(DVD 33장·47만원) 등이 나왔고,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박스(20장)와 바그너의 오페라 박스(33장)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박스 세트를 사기 위해 기존 적금을 깨야 할 지, 새로 적금을 부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애호가들의 푸념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고 있다.
왼쪽부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마리아 칼라스
이들 박스 세트는 이미 음반업계의 매출을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클래식 음반 수입업체인 엔쓰리 컴퍼니의 경우, 5장 이상의 박스 세트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6년 3억 8000만원(15%)에서 지난해 10억 6000만원(33%)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서울 신사동의 클래식 음반점 풍월당의 최성은 실장도 "평소에는 전체 매출의 10% 가량을 차지하지만, 인기 박스 세트가 출시되는 달이면 30~70% 가까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박스 세트의 종류와 분량, 장르가 세분화하면서 '박스의 양극화' 조짐도 보인다. 카라얀 박스 세트가 전형적인 사례다. 최근 유니버설 뮤직은 카라얀 박스 세트를 발매하면서 240장 분량의 전집 세트는 국내 단 20종만 수입한 반면, 대표적 음반 10장을 묶은 박스 세트는 장당 4500원에 불과한 4만 5000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이 세트는 국내에서만 5000장 가까이 팔려나갔다.

하지만 때아닌 박스 전성 시대는 불황을 넘어 빈사 상태에 빠지고 있는 음반 시장의 종언(終焉)을 알리는 '시한 폭탄'이 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낱장으로는 가격 경쟁력을 잃었기에 묶어서 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씨는 "지금처럼 심한 불황에서는 기존 음원(音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짐이 된다. 저작인접권 보유 시한이 만료되기 전에 박리다매를 통해 마지막 이윤을 창출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