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내리자, 무대도 객석도 울었다

  • 울산=김학찬 기자

입력 : 2008.04.16 00:35 | 수정 : 2008.04.16 06:39

장애인 배우들로만 구성된 첫 뮤지컬
울산에서 공연… "박자·동작 틀려도 감동은 2배"

남자 주인공 '고랭이'(손동익·31·뇌병변장애)는 무대 퇴장 방향을 혼동해 우왕좌왕했다. 비련의 여주인공 '이파랑'(이은아·여·33·지체장애)은 연인을 잃게 된 슬픔을 노래했지만, 관객을 압도하기에는 성량(聲量)이 모자랐고, 간간이 박자도 놓쳤다.

메아리학교 학생 10명으로 구성된 무용단도 반주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 때문에 서로의 몸짓과 눈빛을 살펴가며 박자를 맞췄지만, 긴장한 탓인 듯 손과 발 동작이 자주 엇갈렸다. 풍물패의 반주 역시 공연 막바지로 갈수록 화음이 하나 둘 흐트러졌다. 연출을 맡은 장창호(48) 감독은 장면장면마다 가슴을 졸였다.

무대에 올린 작품 '바위에 새긴 사랑'은 울산에 있는 선사시대 바위그림 유적인 반구대암각화(盤龜臺岩刻畵·국보 제 285호)를 소재로 비련의 여 주인공 이파랑과 고랭이의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다.
국내 최초로 출연배우 34명이 모두 장애인으로 구성된 뮤지컬‘바위에 새긴 사랑’ 이 15일 울산 남구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드디어 대단원. 전 출연자가 하나 둘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화해와 용서, 희망을 상징하는 '씨앗'(이원진·42·신장장애)과 '나뭇잎'(김정애·여·53·시각장애)을 둘러싼 채 주제곡을 목청껏 불렀다. 객석이 숙연해졌다.

마침내 조명이 밝아지고, 34명의 전 출연진이 손에 손을 잡고 객석을 향해 머리 숙여 인사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1500여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곳곳에서 "파이팅" "참 잘했어요" "사랑해요" "우! 우!" 하는 환호가 쏟아졌다.

15일 오후 4시와 7시 두 차례 울산 남구 삼산동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첫 선을 보인 최초의 장애인 뮤지컬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1시간20여 분의 공연 시간은 온갖 실수와 엇박자로 가득했지만, 장애인 배우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장애인 배우와 제작진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고, 관객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 감독은 "장애인들은 낯선 상황에 처하면 극도로 긴장하고 숨거나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태어나 처음 서 보는 무대에서 이만한 연기력을 보여준 것은 그들로선 초인적인 의지와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칭찬을 쏟아냈다.

이 뮤지컬은 울산의 지역 극단인 '동그라미극장'(대표 김보헌)이 기획과 제작·연출을 도맡았다. 지난해 8월 이 극단이 장애인 배우들만으로 만든 연극 '미운 오리'가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울산장애인총연합회와 울산시가 후원을 자청했다.

지난 2월부터 지역의 장애인단체를 통해 배우 모집에 나서자 지원자가 쇄도했다. 김보헌(48) 제작감독은 "전문성보다는 장애인의 재활과 참여 열의가 더욱 소중한 가치"라는 제작진의 의견에 따라 신청자 전원에게 배역을 맡겼다.

지난 3월 초부터 한 달간 매일 두 시간씩 연습에 몰두했다. 뮤지컬 전문 배우들도 한 작품당 3개월은 걸려야 하는 것을 한 달 만에 소화해내야 했다. 노래를 지도한 조미옥(48)씨는 "장애인들 스스로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것을 걱정했지만 노래에 빠져 드는 감정은 일반인보다 훨씬 풍부했다"고 말했다.

제작진들은 "연습은 즐겁게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대사나 노래에 대한 완성도를 욕심 내다보면 장애인들 특유의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공연이 두려워질 우려를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관객들이 보기에 '아무리 장애인이지만 뮤지컬이라는데 저게 뭐야?'라는 혐오감은 주지 않아야겠다는 것도 목표였다.

관객 김태영(42·여·울산 남구)씨는 "전문 공연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공연 못지않은 감동으로 가득한 무대였다"며 장애인 배우들과 제작진을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