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4.14 00:04 | 수정 : 2008.04.14 06:58
벚꽃 지는 계절에 눈보라를 날리는 광대극 《스노우쇼》,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소프라노 유현아의 성악 리사이틀, 중견 판화가 오이량씨의 개인전, 재미 교포 부모와 1.5세대 자녀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재미 소설가 이민진의 첫 장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조선일보 문화부가 월요일 아침 배달하는 '문화 상차림' 이번 주 메뉴입니다.
연극
무대는 그림책 같다. 그런데 자살할 것처럼 목에 로프를 감은 광대가 천천히 걸어나온다. 그 줄 끝에 있는 건? 천장도 문손잡이도 느티나무도 아니다. 역시 목에 로프를 건 또 다른 광대가 딸려나온다. 하나가 죽으려면 나머지 하나는 죽지 않고 버텨줘야 하는 것이다. 전화나 의자처럼 흔해빠진 사물들도 《스노우쇼》 무대에서는 몹시 낯설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돌진해온다.
클래식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는 젊은 성악가들의 주간이다. 17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는 카운터테너 이동규씨가 2년 만에 국내 리사이틀을 연다. 영화 《파리넬리》로 친숙해진 카스트라토와 혼동하지 말 것. 거세 가수를 뜻하는 카스트라토와 달리, 카운터테너는 끊임 없는 훈련을 통해 여성의 음역을 넘나드는 남성 성악가를 뜻한다.
최근 바로크 레퍼토리들이 급속하게 확장되면서 안드레아스 숄을 비롯해 이들의 영역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리사이틀에서는 헨델과 퍼셀을 비롯해 슈베르트와 슈만의 가곡까지 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섬집아기〉와 〈아리랑〉 같은 곡들이 포함돼있는 것이 눈에 띈다. (02)548-4480
이틀 뒤인 19일 LG아트센터에서도 2년 전 EMI 데뷔 음반을 통해 주목 받은 소프라노 유현아의 국내 첫 리사이틀이 잡혀있다.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같은 친숙한 곡뿐만이 아니라 슈베르트의 미완성 오페라 가운데 〈보라, 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같은 다양한 작품을 부른다. (02)2005-0114
전시
중견 판화가 오이량씨가 오는 22일까지 서울 신사동 UM 갤러리에서 스물여덟 번째 개인전을 열고 실리콘을 소재로 제작한 판화 20여 점을 건다. 오씨가 줄곧 씨름해온 주제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을 흔드는 은은한 파동을 표현하기 위해 오씨가 택한 소재는 썩지도, 뒤틀리지도, 바래지도 않는 물질 실리콘이다. 그는 실리콘 반죽에 녹차 가루, 숯가루, 솔잎 가루 등을 섞어서 자연의 색을 낸다. 이 반죽을 널빤지에 얇게 펴 바른 다음, 다 마르면 국수가락처럼 가늘고 얇게 잘라내 타원형, 격자 무늬, 꽃과 심장 모양 등으로 촘촘하게 캔버스에 붙인다. 오씨는 자신이 개발한 이 판화기법을 2007년 7월 특허 등록했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다음달 16~26일 청주 사창동 무심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이어진다. (02)515-3970, (043)268-0070
문학
장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이미지박스)은 미국으로 이민 가 세탁소를 하며 아이의 성공만을 바라는 한국인 부모와, 공부를 잘해 법대에 입학허가를 받지만 진학을 거부하는 딸 사이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이민자 가정의 내부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소설은 재미 작가 이민진(39)이 쓴 첫 작품으로 지난해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출간돼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등 미국 유수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일곱 살이던 1976년 부모와 함께 서울을 떠나 뉴욕에서 이민자 1.5세로 자란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대부분 이민자 가정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자녀의 사회적 성공에 모든 것을 거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공부도 잘해서 예일대와 조지타운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3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로 변신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녀는 "남편과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소설에는 한인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가치관 충돌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