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운(悲運)의 프리마돈나가 아닙니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4.09 22:51

내한 독주회 앞둔 소프라노 유현아
93년 남편 총격 피살 아픔 이겨내 교통사고 다음날 카네기홀 공연도

미국 볼티모어에 살고 있는 소프라노 유현아(40·사진)는 지난해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겪었다. 1월 고속도로에서 일어났던 7중 추돌 사고 때는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지만, 11월에는 사거리에서 차 측면을 받혀 한 달이나 목 깁스를 했다. 공교롭게 사고 다음달 뉴욕 카네기 홀에서 리사이틀이 있었다. 무대 뒤에서 깁스를 하고 있던 그녀는 노래를 부르러 나가기 직전에야 깁스를 풀었다. "관객들에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할 수 없어서 허리부터 통째로 굽혀야 했지요."

유현아가 성악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그녀는 지난 1993년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난 총기 사고로 남편을 여읜 뒤부터 뒤늦게 성악을 시작했다. 지난 2006년 세계적 음반사 EMI를 통해 첫 독집 음반을 내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개인적인 사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비운의 여주인공' 모습은 아니었다. 첫 내한(來韓) 독창회(19일 서울 LG아트센터, 22일 김해문화의전당, 25일 울산 현대예술관)를 앞두고 만난 유현아는 밝고 쾌활한 웃음으로 누군가 중간에 끊어주기 전까지는 결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말을 많이 하면 성악가의 목에 좋지 않아요. 너무 제가 나가면 중간에 멈춰주세요." 하며 2시간 가까이 대화를 이어갔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유현아의 리사이틀에는 오페라 아리아가 거의 없다.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꿈꾸는 여느 소프라노와는 다른 점이다. 이번 리사이틀에도 슈베르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리아 〈보라, 이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가 한 곡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대신 멘델스존과 풀랑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라흐마니노프까지 독어·불어·영어·러시아어·이탈리아어 등 5개 국어를 넘나드는 가곡들로 빼곡하게 채웠다.

"독창회는 손님들을 저희 집에 초대한 뒤 저 스스로 요리를 해서 상을 차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리사이틀이 아니면 평소 접하기 힘든 요리들을 맛보라고 권하는 거죠."

2년 전 인터뷰에서 유현아는 "음악은 무엇보다 아픔을 치유해준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럴까. "제 마음이 달라지면 언제라도 당장 노래를 중단할 거예요. 노래하면서 종종 저 자신도 울어요. 울 수 있다는 건 마음이 열려있고 무언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죠. 그 때 음악이 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 마음을 위로해 줘요." 그는 성악가의 자산인 목소리에 대해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악기"이며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악기"라는 점에서 연약하지만 매력적이라고 했다. 문의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