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열기 속… 섭씨 34도의 제야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4.02 23:39

[클래식 ABC]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우리의 겨울이 바로 한여름입니다. 우리가 두꺼운 코트 차림으로 함박눈을 기대할 때, 그들은 반팔 차림으로 여름의 정취를 만끽하지요. 2006년 12월 3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레 푸블리카 광장에는 1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Barenboim)의 지휘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제야 음악회가 광장 한복판에서 열린 것입니다.

당시 온도계가 섭씨 34도를 가리켰던 열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음악회의 주제는 당연하게도 '탱고'입니다. 최근 이 공연 실황이 〈탱고 아르헨티나〉(DVD·이클라세)라는 멋진 제목으로 국내 소개됐습니다.

달변가 바렌보임이 마이크를 놓칠 리 없습니다. 바렌보임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저는 이곳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고 말한 뒤 "오늘만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필하모닉이 탱고 오케스트라가 될 것"이라며 청중의 환호를 이끌어냅니다.
2006년 12월 31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무용수들이 탱고를 추고 있다.’/이클라세 제공.

단 둘이 추는 이인무(二人舞) 가운데 가장 농염한 춤이 바로 탱고 아닐까요. 공연 중 탱고를 상징하는 악기인 반도네온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다가 짙은 입맞춤으로 마무리하는 무용수의 동선(動線)은 섹시하기 그지 없습니다. 광장 한복판에서 탱고를 추고서 1만명의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나라도 아르헨티나뿐이겠지요.

당시 유럽에 생중계됐던 이 음악회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문화적 자긍심도 함께 드러납니다. 지휘와 피아노, 해설까지 맡은 바렌보임은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 유럽의 이민자와 다른 나라의 이민자들에게 모두 개방되어 있었다. 독일·프랑스 이민자, 시리아와 레바논 사람들, 유대인, 폴란드인, 이탈리아인이 함께 살고 있으며, 우리는 여기서 함께 사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것이 지금 이민 문제로 힘겨워하는 유럽에 보내는 우리의 메시지"라고 말합니다. 탱고에 실어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는 매혹적이기 그지없습니다.

〈메시아〉나 〈합창〉 같은 연말 단골 레퍼토리 말고도 얼마든지 멋진 제야 음악회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탱고가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다"는 바렌보임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한겨울에 그 광장을 밟고 싶어집니다.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Piazzolla)의 〈안녕 노니노〉라도 곁에 틀어놓고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