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숭깊고 올곧은 목소리…넉넉한 고(古)음악과 화려한 앙상블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3.28 23:49

독일 古음악단과 협연한 소프라노 캐롤린 샘슨

노래에 따라 천 가지 서로 다른 표정을 짓는 성악가를 곁에서 지켜보는 건 얼마나 행복한가. 27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독일의 명문 고음악단인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소프라노 캐롤린 샘슨(Sampson)은 헨델의 아리아들을 골랐다. 환한 웃음과 함께 무대에 입장한 샘슨은 오케스트라 반주가 시작하기 무섭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헨델의 오페라 《알치나》가운데 〈그러나 당신이 돌아온다면〉과 〈아! 나의 마음이여〉는 떠나려는 연인에 대한 원망과 붙잡고 싶은 미련을 동시에 담아내야 하는 극적인 곡들이다. 샘슨은 꾸밈이 적으면서도 올곧은 목소리의 선이 웅숭깊었다. 화려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와는 또 다른 헨델의 멋을 선보였다.
소프라노 캐롤린 샘슨(오른쪽)이 독일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있다.

이어서 2부에서도 샘슨은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 가운데 〈울어라 나의 운명이여〉에서 또 한 번 표정 연기를 선보였다. 아리아의 절정에서 울먹임을 섞어 가련한 여인의 표정으로 순도 높은 절창(絶唱)을 터뜨리다가, 곧이어 〈배가 폭풍을 헤치고〉에서는 환하고 흥겨운 표정으로 되돌아와 갈채를 끌어냈다. 앙코르에서 아리아 〈울게 하소서〉의 첫 소절이 울려 퍼지자 객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곡은 영화 《파리넬리》에 실려 대중적으로도 친숙하다. 임신 3개월 '예비 엄마' 샘슨의 헨델 태교는 뱃속의 아이뿐 아니라 청중들에게도 울림이 컸다.

이날 공연에서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음악당이었다. 2부 첫 곡인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의 〈신포니아〉에서는 첼로에서 비올라, 다시 제2바이올린에서 제1바이올린으로 네 겹의 푸가로 진행되는 두터운 소리 층이 모두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였다. 고(古)음악은 스무 명 안팎의 소편성에다 악기 자체의 음량도 적고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아람음악당(1440여 석)은 이 소리를 입체적이면서도 넉넉하게 담아냈다. 마치 고급 오디오 앞에 앉은 듯 호사스러움을 안겼다. 악기 개량 이전의 호른이 보여주는 거칠고 투박한 소리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별도의 지휘자를 두지 않고 바이올린을 맡은 악장 코트프리트 폰 데어 콜츠의 고갯짓과 표정 리드에 따라 호흡을 맞추는 민주적 앙상블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고음악은 음반과 실연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우려와 선입견을 동시에 씻어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