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강렬한 열정… 아쉬운 조화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3.26 23:40 | 수정 : 2008.03.26 23:40

BBC 필하모닉 내한공연

박지성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영국 맨체스터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축구 도시지만, 올 시즌 창단 150주년을 맞이한 할레 오케스트라와 BBC 필하모닉을 보유하고 있는 교향악 도시이기도 하다. 할레 오케스트라는 더 타임스(The Times)가 선정한 영국 최고 교향악단 평가에서 런던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BBC 필하모닉은 어떨까. 미국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보다 성적이 못나온다고 뉴욕 메츠가 훌륭한 팀이 아니라는 법은 없다. 그 평가는 25일 서울 공연에서 판가름 났다.

수석 지휘자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난드레아 노세다(Noseda)는 러시아의 명 지휘자 게르기예프를 사사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승처럼 이쑤시개 크기의 미니 지휘봉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열정적이고 큰 동작만큼은 게르기예프를 빼닮았다. 첫 곡인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은 자칫 흥이 지나치다 보면 섬세한 디테일을 놓치기 쉬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노세다는 박자를 다소 빠르게 잡아가면서도 든든한 금관과 탄력 넘치는 현악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선보였다.
BBC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 자난드레아 노세다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비창’을 지휘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올해 스무 살을 맞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이 날 연주회의 백미(白眉)였다. BBC 필하모닉은 마치 당대 연주처럼 강약의 증폭을 통해 날렵하고 경쾌하게 곡에 다가갔다. 조응이라도 하듯이 김선욱도 명징하고 또박또박하게 접근했다. 1악장 독주(獨奏)에서 묵직하게 건반을 누르는 힘은 청각 이전에 촉각으로 먼저 다가왔다. 2악장 도입부에서는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듯이 성숙함을 자랑했다. 김선욱은 오케스트라 반주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연주 도중 입으로 "풋풋"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2부 메인 요리로 마련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에는 분명 아쉬움이 남았다. 1악장에서 바순이 조금 늦게 들어오거나 4악장에서 다른 바이올린 주자보다 악장(콘서트 마스터)이 먼저 튀어나온 것은 대세에 큰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지휘봉을 내려놓고 열 손가락을 사용한 지휘자의 열정과는 달리, 전체 앙상블은 촘촘하지 못했다. 현과 활이 맞닿는 현악의 밀도 높은 소리를 적극 활용한 아이디어는 돋보였지만, 목관의 윤기가 다소 부족했고 현악과 관악 사이의 교통 정리가 말끔하지 못했다. 차분하다기보다는 주정적(主情的)으로 달려나간 '비창'에 가까웠다. 내한 공연에서 다른 악단들보다 더 뜨거운 체감 온도를 보여준 열정은 돋보였지만, 다음 시즌 상위권 진입을 위해서는 야무지고 탄탄한 조직력을 살려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