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너무 짧아서… 영원히 '화폭에 가둔 봄'

  • 곽아람

입력 : 2008.03.21 16:46 | 수정 : 2008.03.23 02:02

[名作파일]

봄은 슬며시 찾아와 찬란하게 빛나다가, 흔적 없이 사라진다. 금세 사그라질 봄의 흥취가 아쉽다면 동·서양 화가들이 붓끝으로 낚아 화폭에 가둔 봄 풍광들을 감상해 보자.

초봄, 잔설(殘雪) 속에서 또다시 눈발이 날린다. 메마른 가지 끝에서 점점이 피어났다가 분분히 떨어지는 꽃눈, 매화(梅花)다. 매화꽃 흐드러지게 핀 숲 속, 붉은 옷 입은 사내가 어깨에 거문고를 메고 다리를 건넌다. 다리 저편 자그마한 집에선 연둣빛 옷을 입은 벗이 피리 불며 기다리고 있다. 두 친구가 매화를 완상(玩賞)하며 빚어낼 음률에서 봄빛이 흠뻑 묻어날 것만 같다. 조선시대 화가 고람(古藍) 전기(田琦·1825~1854)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다. 추사(秋史) 김정희의 애제자였던 전기는 서른 살에 죽었다. 일찍 피었다 일찍 지는 매화를 닮은 그의 삶이 애달프다. 매화를 아내 삼고, 학(鶴)을 자식 삼아 은거하고자 했던 송(宋) 시인 임포(林逋)의 삶에 대한 헌사로 그려진 이 그림은 후세의 우리가 초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도 손색이 없다.

당(唐)의 궁정화가 장훤(張萱·8세기 전반 활동)은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양귀비(楊貴妃·719~756) 자매가 말 타고 봄나들이를 가는 장면을 경쾌하고 가벼운 필치로 그렸다. 송(宋)대의 모본만 남아있는 이 그림은 '괵국부인유춘도(요녕성박물관)'. '괵국부인'은 동생 덕에 갖은 호사를 누리다가 마침내 현종과 바람이 나는 양귀비의 언니다. 복사꽃 빛깔 여인들의 옷차림에서 봄 냄새가 물씬 난다. 시선(詩仙) 이백(李白)이 모란에 비유했던 아름다움을 지닌 양귀비의 봄은 그러나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구(詩句)처럼 '찬란한 슬픔'으로 끝난다.
조선시대 화가 전기(田琦)의 '매화초옥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봄 햇살의 발랄한 색채를 가장 잘 표현한 서양 화가는 르누아르(Renoir·1841~1919)다. 그의 1876년 작 '물랭 드 라 갈레트(Le Moulin de la Galette·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는 늦봄, 빛의 유희를 만끽하는 파리지앵들의 흥겨운 얼굴들로 가득하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의 몽마르트에 있었던 야외 무도회장. 휴일 오후면 나들이 나온 파리 젊은이들의 활기로 넘쳐났던 곳이다. 르누아르는 계절로서의 봄뿐 아니라 '인생의 봄'을 즐겨 그렸다. 말년에 관절염으로 고통 받았던 화가는 "그렇게 아픈데도 꼭 그림을 그려야겠느냐"고 묻는 벗에게 답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