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3.20 23:26
'아리랑' 록 버전등 선보여 백인 관객들 "YB, YB"열광
英 BBC등 인터뷰 요청 쇄도 "가능성 충분" 美 진출 청신호
지난 12일(현지시각) 낮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외곽 리앤더의 한 목장 창고. 윤도현밴드(윤밴·영어명 YB)가 노래를 마치자 모여있던 백인 30여명이 앙코르를 외쳤다. 윤밴은 다음날 오스틴 시내에서 열릴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 공연 리허설 중이었고,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주민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즉석 공연'이 돼버렸다. 목장 주인인 한국인이 이곳을 연습장으로 제공했다.
윤밴은 앙코르로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즈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를 불렀고, 흥을 견디지 못한 케리 앨런(45)씨가 앞으로 나와 윤도현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앨런씨는 윤도현에게 "파워 넘치는 목소리가 정말 좋다"며 "한국에 가면 꼭 CD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텍사스주립대(UT)와 텍사스 내 유일한 민주당 거점 도시로 이름난 오스틴은 '세계 라이브 음악의 수도'를 자칭한다. 1987년부터 매년 열리는 SXSW 페스티벌 때문이다.
5일간 68개 라이브 클럽에서 1500여개 밴드가 동시에 공연하는 이 페스티벌은 메이저 기획사가 아닌 소규모 레이블 소속 인디밴드들의 음악축제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미국에 진출하려는 전 세계 인디 밴드들이 관심을 갖는다.
윤밴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이 페스티벌에 초청 받았다. 공식 쇼케이스 무대인 '데이 스테이지(day stage)'에 서는 밴드는 극히 한정돼 있으며, 윤밴은 올해 아시아 밴드 최초로 이 무대에 올랐다. 이미 수년 전 유럽 투어를 통해 자신감을 확보한 윤밴은 미국에서도 교포사회가 아닌 인디 페스티벌을 공략하는 중이다.
13일 밤 9시30분 라이브 클럽들이 밀집한 오스틴 시내 6번가. 클럽 '버번 락스(Bourbon Rocks)' 앞에 한국 청년들이 30m 이상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인디 페스티벌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어서 백인들이 "무슨 밴드 공연이냐"고 묻곤 했다.
이어 10시 정각, 윤밴이 무대에 올랐다. 첫 곡은 6집 앨범에 실린 '죽든지 말든지'의 영어 버전인 '플레시 앤드 본즈(Flesh & Bones)'. 강렬한 메탈 리프를 도입부에 넣어 재편곡한 이 노래에 400여 관객은 펄쩍펄쩍 뛰며 열광했다. 대부분은 한국인 유학생 또는 가족으로 보였으나 백인들도 50여명쯤 자리를 차지했다. 윤도현은 노래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이야기할 때도 모두 영어를 썼다. 공연은 '나는 나비'의 영어 버전인 '어 플라잉 버터플라이(A Flying Butterfly)'를 비롯해 '아리랑'의 록 버전까지 40분간 계속됐다. 밴드당 공연시간은 1시간이지만, 다음 밴드 준비를 위해 20분 먼저 끝내야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음악 배급업을 하는 켄 노튼(45)씨는 한국 밴드 음악을 처음 듣는다고 했다. "끝내주는데요(It was phenomenal)! 아주 인상적입니다. 특히 에너지가 넘치는 음악이고 사운드도 단단해요. 음악에 심이 잘 박혀있습니다." 그는 "미국 인디 시장부터 시작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윤밴은 이날 낮 12시 오스틴 컨벤션센터 '데이 스테이지'에서 세계 음악업계 관계자들을 상대로 30분짜리 쇼케이스를 열었다. 쇼케이스 직후 영국 BBC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윤밴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윤밴 소속사인 다음기획에 문의해 온 음악 관계업체도 미국을 비롯해 남아공 등 10여 곳에 달했다.
공연 후 윤도현은 "음향장비가 좋지 않고 공연장도 썩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 음악을 최선을 다해 들려줬다"며 "앞으로 미국 도시들을 돌며 클럽에서 공연하는 것이 1차 목표"라고 말했다. 베이시스트 박태희는 "미국 진출로 치자면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하는 셈"이라며 "더디더라도 나무처럼 묵묵히 조금씩 전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1만여 팀 참가 신청… 전세계 인디 밴드 '꿈의 축제'
SXSW 페스티벌은?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페스티벌은 매년 3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시내에서 열린다. 전세계에서 매년 1만여 밴드가 CD와 비디오클립을 보내 참가 신청을 하며, 이 중 미국이 아닌 나라 밴드는 2000개 가량이다. 미국 출신을 제외한 밴드 400개를 포함, 1500여 밴드가 오스틴에서 공연한다. 참가 자격을 얻지 못한 밴드들이 길거리에서 공연을 벌이는 것까지 합치면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규모로 보면 세계 최대이지만, 무명에 가까운 인디 밴드들의 축제이므로 지명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간혹 세계적으로 이름난 밴드들이 작은 클럽에서 공연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의 경우 R.E.M이 오스틴에 왔으나, 이 공연을 보려면 가장 비싼 티켓인 650달러짜리 티켓이 있어야 했다. 한국은 윤밴이 작년 처음 이 페스티벌에 참여했으나, 일본은 이미 한 클럽을 하루 통째로 쓰는 '저팬 나이트(Japan Nite)'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