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의 울림 또는 영혼의 분출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3.19 23:09 | 수정 : 2008.03.20 07:00

연극 '블랙버드' '애쉬즈 투 애쉬즈'
어긋난 사랑에 관한 두 여배우의 연기 대결

열두 살 때 마흔 살의 이웃집 사내와 성관계를 한 우나(추상미)는 15년 뒤에 그 남자를 찾아와 묻는다. "우리가 정말 사랑을 했을까?" 같은 시각 다른 무대에서 레비카(김호정)는 남편에게 불륜 사실을 고백한다.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의 연극 '블랙버드(Blackbird)'와 산울림소극장의 '애쉬즈 투 애쉬즈(Ashes to ashes)'는 이렇게 열린다. 좋은 희곡 없이는 좋은 연극도 없다. 영국에서 날아와 국내 초연인 두 작품은 그래서 기대해 볼 만하다. '블랙버드'는 2007년 로렌스올리비에 상을 차지한 희곡이고, '애쉬즈 투 애쉬즈'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롤드 핀터의 1996년 작이다.

‘애쉬즈 투 애쉬즈’의 김호정〈아래〉과 한명구. /산울림소극장 제공
◆두 여자의 사연

'블랙버드'에서 우나는 15년 만에 레이를 만나 '그날'의 기억을 재생한다. 둘이 어떤 오해 끝에 헤어졌는지, 그 상처가 우나를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등이 밀도있는 대사로 풀려나온다. 마지막 장면의 반전도 충격적이다. 최정우가 레이 역을 맡고 이영석이 연출한다. 최근 끝난 호주 공연에서는 영화 '엘리자베스' '골든에이지'의 케이트 블란쳇이 우나로 출연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블랙버드'는 죄지은 사람의 짐을 쪼아먹는 새다.

'애쉬즈 투 애쉬즈' 역시 남녀의 2인극. 영국의 한 전원주택에서 정부(情夫)에 대해 말하는 레비카는 너무도 당당하다. 남편(한명구)은 추궁하는데, 레비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일을 털어놓는다. 전문 연출가로는 산울림이 선택한 최초의 여성 연출가인 박정희는 "레비카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기억을 미화시킨다"며 "핀터 작품답게 웃기는 코드도 많다"고 말했다. 제목은 '재(災)는 재로'라는 뜻. "공연에 재 뿌릴 일 있냐"는 내부 의견 때문에 영문 발음대로 달았단다.

◆추상미 대 김호정

두 연극 다 여성 중심이다. 추상미와 김호정은 대학로에서 연기력으로 베스트5에 드는 여배우. 추상미가 무대에 오르면 공기까지 달라진 느낌을 받는다. 그 몰입과 에너지에 관객도 집중하게 된다. 아버지(추송웅)의 감수성과 열정을 물려받았다는 평이다.

김호정은 발산하기보다 안으로 향하는 배우다. 연극 '보이체크' '첼로와 케찹', 영화 '나비' '플란다스의 개'에서 건조하고 부서질 것 같은 인물들과 잘 어울렸다. 이번에도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마음의 진동을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배역이다.

▶'블랙버드'는 21일 동숭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02)766-3390 '애쉬즈 투 애쉬즈'는 20일부터 산울림소극장. (02)334-5915

‘블랙버드’의 추상미. /동숭씨어터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