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사기꾼들, 사소한 기적을 낳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3.19 23:13 | 수정 : 2008.03.20 06:59

[리뷰] 뮤지컬 '나쁜 녀석들'

로렌스(김우형)에겐 사기(詐欺)도 예술의 한 장르다. 망명한 왕자인 척하는 그는 "보석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있다"는 말로 여자들의 마음과 재물을 훔친다. 또 다른 사기꾼 프레디(김도현)는 동정심이나 모성애를 자극하는 데 선수다. 둘은 '지면 은퇴한다'는 조건으로 내기를 한다. 대기업 회장의 딸 크리스틴(윤공주)에게 먼저 5만달러를 뜯어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뮤지컬 '나쁜 녀석들'(연출 황재헌)은 객석과 눈짓을 주고받으면서 거리감을 좁힌다. 주인공들의 연기와 수법을 다 아는 관객은 공모자가 된 심정으로 이 코미디를 관전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꿰뚫어야 성공하는 사기처럼, '나쁜 녀석들'은 보통관객을 즐겁게 해준다. 어느 순간부터 객석엔 웃음이 넘쳐흘렀고, 여러 차례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영화 '화려한 사기꾼'(1988)이 원작인 '나쁜 녀석들'은 200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해 "'프로듀서스' 이후 최고의 코미디"라는 평도 받았다. 이번 한국 무대는 '프로듀서스'와 달리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대극장에서 중극장 사이즈로 줄어들었지만 객석을 웃기는 요들송, 관객과 내통하는 연기와 춤, "비참하게 단물 쓴물 쪽쪽 빨아먹힌 나~" 등 한국화한 개사(改詞)들로 코미디의 결이 잘 살아났다. 프레디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서는 대목은 "험한 세상, 다리 되어~"라는 감각적인 노랫말과 어우러져 호응이 뜨거웠다.

'나쁜 녀석들'은 거기서 게임오버를 선언하지 않는다. 객석을 흔드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무대가 가난하고 안무의 비중이 작아진 점, MR(녹음반주)을 쓰는 게 아쉽지만 김도현 등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수준급이고 연출도 매끄럽다.

공연을 고르면서 '기적'을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은 하루 저녁 즐거우면 그만이다. 이 뮤지컬에서 프레디는 "치킨 시켰는데 다리가 3개 나오고, 피자 주문했는데 30분 지나서 공짜로 한 판 더 받으면 그게 기적"이라고 말한다. '나쁜 녀석들'은 그만큼의 놀라움, 그 정도 크기의 만족을 주는 코미디다.

▶5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