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하지 않은 선택, 화려하지 않은 고백

  • scene PLAYBILL editor 김민주
  • scene PLAYBILL photographer 왕태균

입력 : 2008.03.17 09:19

배우 정동현

고작 열여섯이었다. ‘춘천발 서울행’을 택했던 나이. 무대에 서고 싶다던 막연한 열정은 꽤나 구체적인 결정으로 이어졌다. 낯선 도시의 탁한 공기는 사춘기 무렵의 소년에겐 그다지 두려운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렇게 서서히, 정동현은 배우의 삶에 근접해갔다. 2004년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의 예수 역할로 데뷔했으니 어느덧 5년차.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밴디트', '미스터마우스', '컨추리보이 스캣', '젊음의 행진', '알타보이즈', 그리고 가수 활동까지. 허투루 보낸 시간은 없었다. “20대 초반이었잖아요. 뭐든 하고 싶었어요. 물론 가수 하면서 실패도 경험했지만, 지레 결과를 예상해가며 겁먹진 않았어요.”


정교한 서사구조를 지니면서도 아기자기한 설정들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할 장유정 연출의 신작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3.22-6.8).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향집에 모이게 된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정동현은 지적이면서 냉소적인 성향의 동생인 ‘이주봉’ 역할을 맡았다. 전작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이다. 관객과의 소통이 관건인 콘서트형 뮤지컬 '알타보이즈'에서 리더 ‘매튜’ 역으로 분하여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온전한 연결고리, 그리고 완성도예요. 솔직히 신파적인 요소가 좀 있어요. 하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잖아요. 드라마가 강한 작품은 참 오랜만이죠. 게다가 이렇게 냉철한 역할은 처음이라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어요. 최대한 절제하려고요. 노래할 때나, 연기할 때나, 과장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정동현은 자신을 향한 편견들을 알고 있다며 직접 운을 뗐다. “멋진 역할만 한다, 주인공만 꿰찬다, 외모 덕에 과대평가되었다” 등의 것들. 제법 담담한 말투였다. 겉치레로 버텨온 게 아니었다. 이름 앞에 배우라는 타이틀을 내건 순간부터 말이다. 때문에 그는 크게 괘념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보다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들을 또박또박, 매우 들뜬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헤드윅'은 정말,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아직 그럴 실력이 아닐지라도, 지금 당장 해보고 싶어요. 가슴이, 심장이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 말이죠. 배우 한 명이 그야말로 벌거벗겨진 상태에서 대사만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잖아요. 저 스스로에게 어쩌면 굉장히 두려운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도전하고 싶어요. 오디션 땐 토마토를 들고 갈 작정이에요.(웃음)”


벌써 5년, 아니 고작 5년이다. 일생을 놓고 보면 그렇다.  무대를 동경하고, 그 안에서의 영원을 꿈꾸는 정동현에게 정호승 시인의 '넘어짐에 대하여'라는 시 일부를 들려줄까 한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