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 scene PLAYBILL editor 김민주

입력 : 2008.03.17 09:15

사진작가 김아타(Atta Kim)

사진을 도구로 삼는 철학가 혹은 달변가, 김아타는 서둘러 말한다. “내 모든 작업은 ‘존재’와 ‘정체’에 관한 이야기이다”라고. 축소하지도, 확대하지도 말고, 딱 이만큼의 그를 보자. 아울러 네 가지 키워드는, 김아타의 세계에 접근하는 유용한 팁이 될 것이다.


이름은 아이덴티티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더군다나 스스로 지은 이름일 경우엔, 이름은 한 개인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일 가능성이 높다.


아(我) 그리고 타(他)


아타는 ‘나와 너’를 의미하며 작업 중에 작명했다. 광의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곧 우주와 같음’이다. 인간의 내면을 소우주라 일컫지 않나. 살아간다는 건 결국 관계한다는 것이더라. 내가 너와, 네가 나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말이다.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고, 이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내가 진행했던 'The Museum Project'와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The Museum Project'에서는 평범하고 소박한 인물들을 박제처럼 연출하여 기억될만한 존재로 격상시켰고, 'ON-AIR Project'에서는 권력과 명성을 소유한 자들을 얼음이란 매개를 이용하여 결국은 사라지고 마는, 미약한 개체로 만들어버렸다. 꽤나 역설적이다.


역설의 달인


내 작업은 1991년-1995년 '해체' 시리즈, 1995년-2001년 'The Museum Project' 2001년-현재 'ON-AIR Project'로 정리할 수 있다. 선행 작업들이 다음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다. 여기에서도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The Museum Project'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유리 상자를 씌워서 박물관의 유물처럼 의미를 부여한 작업이었다. ‘모든 사물은 존재의 가치를 가진다’ 를 콘셉트로 했으며, 'ON-AIR Project'는 ‘하지만 결국은 사라진다’를 말하고자 했다. 여기서 사라짐은 부정적인 의미가 전혀 아니다. 사라짐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사라짐의 방법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8시간 이상의 장 노출로 움직이는 속도에 비례하여 존재를 사라지게 하는 것, 바삐 움직이는 차량과 사람들은 그만큼 빨리 사라지고 만다. 길이나 극장 등은 그대로인 채. 둘째, 얼음을 이용해 존재를 녹이는 것. 작업하면서 마오쩌둥을 녹게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사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셋째, 일만 컷의 이미지를 포개어 놓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 원래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 개체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존재와 개체를 위해 사진이란 도구를 이용하고, 역설이란 화법을 구사한 것이다.  


틈만 나면 메모한다. 그리고 온 종일 사진을 찍는다. 대단한 열정, 놀랄만한 지구력이다. 올 초, 조선일보와 김달진 미술연구소가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작가들’ 시리즈에 그를 선정하였다. 세상은 이미 그를 기록하고 있었고, 기억할 준비도 마친 셈이다.


기록함 혹은 기억됨


사진과 메모. 기록하고 기억하고 재생하고. 두 행위의 목적은 같다. 잊혀 지지 않는다는 것의 주체는 아티스트가 아닐 것이다. 아티스트의 사상 또는 철학에 해당한다. 물질이 아닌, 정신의 가치를 확인받는 것이기에 굉장한 영광이다. 100년씩이나 지나서도 감사하다.


3.21-5.25, 로댕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중국의 텐안먼(天安門)광장을 담아내던 그의 렌즈가 한동안 어떤 세계에 천착하며 살아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이 생긴 것이다. 


뉴욕, 중국, 이번엔 인도


2006년 뉴욕 ICP(국제사진센터)에서의 전시보다 큰 규모이며 총 35점의 'ON-AIR Project' 대표 작품과 만나게 될 것이다. 실제 프린트 작품을 선보이며, '해체'시리즈와  'The Museum Project'는 영상으로 편집된다. 또한 15분 가량의 평소 작업 과정을 비롯해 인도에서의 모습 등을 담은 동영상도 제작·상영된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인도에서 8시간 동안의 장시간 노출로 찍은 3만 장의 이미지를 겹쳐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시킨 ‘인다라(Indala)’이다. 인도에서의 전체적인 주제는 ‘만다라’이다. 만다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뜻하며, 나는 만 장, 혹은 삼 만장을 촬영하고 이를 쌓아올린 후 하나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미니멀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변함이 없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