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팬은 아직 살아있다

  • 한현우 기자

입력 : 2008.03.09 23:15

[한현우 기자의 음담악설]

한국의 라이브 관객은 말 그대로 '소수정예'다. 그 수가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으나, 공연에 대한 충성도는 하늘을 찌른다. 이는 지난 7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미국밴드 '마룬 파이브' 공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 팬들의 엄청난 환호에 밴드 리더인 애덤 레빈은 무척 감동한 것 같았다. 카메라가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가까이 잡아 대형 스크린에 비췄다. 그는 예정된 앙코르 세 곡 중 마지막 곡 '스위티스트 굿바이(Sweetest Goodbye)'를 부르며 "이 곡을 한국에 헌정한다"고 말했다. 곡이 끝나자 모든 멤버들이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나 관객들은 돌아가지 않고 일제히 발을 굴렀다. 잠시 후 멤버들은 다시 무대로 나왔다. 그러곤 프린스의 명곡 '퍼플 레인(Purple Rain)'을 불렀다. 외국 밴드 공연에서 예정된 앙코르 외에 또 앙코르 곡을 하는 것도, 앙코르로 남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멤버들은 공연을 마치고 "이런 환호는 세계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며 "즉석에서 한 곡을 더 하기로 하고 평소 좋아하던 '프린스'의 노래를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공연을 마친 마룬 파이브는 10일부터 일본 투어에 나선다. 17일까지 도쿄, 오사카, 히로시마를 돌며 5회나 공연한다. 얌전히 제 자리에서 박수치는 일본 관객들을 보며 마룬 파이브 멤버들은 서울 체조경기장의 열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공연을 본 뒤엔 음악동네 사람들과 근처 맥줏집에 모여 짧은 공연 품평을 하게 마련이다. 이날도 그랬다. 첫 곡에서 왜 애덤 레빈이 음정을 놓쳤을까, 기타와 키보드 소리를 일부러 줄인 건가, 노래는 정말 잘 하는데 연주는 그저 그랬다, '퍼플 레인' 나올 때 신곡인 줄 알고 어리둥절해한 사람들이 많았다 등등. 그러나 이런 품평의 끝은 늘 비슷하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왜 한국에서 음악 만드는 사람들은 쫄쫄 굶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애써 '희망'을 얘기하며 헤어진다. 음악시장은 죽었으나 음악 팬들은 하나도 죽지 않았다는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