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3.06 23:20 | 수정 : 2008.03.07 01:33
영국 예술가 뱅크시 '한국판' 등장
스프레이를 든 소년이 그려진 담벼락, 화가 마티스의 작품 '푸른 누드2'를 흉내낸 그림이 찍힌 양철대문, 강아지를 끌고 가는 경찰이 그려진 시멘트벽….요즘 '비주류 문화의 성지(聖地)' 서울 홍익대 앞 골목골목을 거닐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만나는 풍경이다. 비슷한 패턴의 그림이 복사본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찍혀 있는 것도 있고, 낙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형태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몰고 있는 영국 출신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영향이 홍대에 상륙했다. 뱅크시는 대형할인매장 '테스코' 깃발을 향해 경례하고 있는 어린이, 애완견을 끌고 다니는 경찰, 노상 방뇨하는 근위대 등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그래피티(graffiti·낙서처럼 벽에 그린 그림) 예술가. 철저하게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남들의 눈을 피해 작업해 '게릴라 예술 테러리스트'로도 불린다. 최근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면서 인기가 치솟고 있는 상황.
홍대 일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판 뱅크시' 붐도 형태는 비슷하다. 간혹 그림 끝에 'DOUBLE-P' 같은 직인이 찍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익명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뱅크시가 즐겨쓰는 스텐실 기법(모양을 오려낸 후 그 구멍에 물감을 넣어 그림을 찍어 내는 미술 기법)이 주를 이룬다는 것도 닮았다. 한 큐레이터는 "신출귀몰의 대가 뱅크시가 서울 이태원 등지를 방문해 어딘가에 흔적을 남겨놓고 같다는 소문까지 나돈다"고 말했다.
하지만 뱅크시 '아류'라는 평은 당분간 벗기 힘들 것 같다. 그래픽 아티스트 박훈규씨는 "뱅크시는 기성 미술을 허물어뜨리는 수단으로 '길거리 예술'을 들고 나왔지만, 지금 국내에서 보이는 것들은 뱅크시를 그대로 모방한 '짝퉁 뱅크시류'일 뿐"이라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