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피아노를 가르칠 때 제자는 욕심까지 배웠다

  • 김성현 기자 (블로그)
  • 정남이 인턴기자

입력 : 2008.03.06 00:12 | 수정 : 2008.03.06 08:54

● '건반위의 카멜레온' 스승 김대진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46)와 김선욱(20)은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욕심 많은 사제(師弟)다. 스승은 피아니스트에 머물지 않으면서 청소년 음악회 해설자와 실내악단 음악 감독, 지휘자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영역 확장'을 꿈꾸고, 제자는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오케스트라 협연을 소화해내며 한없는 '레퍼토리 확장'을 노린다. 이들의 욕심과 변신에는 이유가 있다.

"네가 다 말아 먹냐?" 요즘 김대진 교수가 음악계 동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너무 욕심 많은 것 아니냐?"라는 비판은 그래도 점잖은 편에 속한단다.

그럴 만할지도 모른다. 2001년부터 3년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전곡(27곡) 연주회를 통해 독주자로 뚜렷하게 이름을 각인시킨 뒤, 곧이어 2004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예술의전당 청소년 음악회 '김대진의 음악 교실'을 통해 지휘·연주·해설까지 '1인 3역'을 선보이고 있다.

해설자인가 싶더니 지난해 금호아트홀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음악 감독으로 '실내악 겸업'을 선언했고, 이 달과 다음달에는 수원시향의 지휘봉을 두 차례 연이어 잡는다. '한국의 레너드 번스타인(Bernstein)' '건반 위의 카멜레온'이라는 애칭이 자연스럽게 따라다닌다.

"피아니스트는 스스로를 잊고서 음악에 몰입해야 하지만, 지휘자는 단원들을 몰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입장이 다른 만큼 매력도, 위험도 크다."

그는 "자신 없는 것에 무조건 도전한 적은 없었다"며 자신감도 함께 드러냈다. 연주와 해설, 지휘와 음악 감독까지 음악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 가장 두려운 순간은 역시 건반 앞에 설 때다.

"누구나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다. 어릴 적 보여줬던 눈부신 재능이 모두 고갈된 천재들을 볼 때마다 '단순한 기능인(人)으로 전락하거나 쇠퇴만 남은 것이 아닐까'라고 자문한다."

13일 수원시향 연주회에서는 스승 김 교수가 지휘봉을 잡고, 제자 김선욱의 협연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협연한다. 상임 지휘자로서 국내 오케스트라를 책임질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김 교수는 "나는 완성된 지휘자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에 공감해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이라고 했다. 역시 이 남자의 욕심, 끝이 없다.

▶김대진 지휘 수원시향 연주회: 13일 경기도문화의전당(수원), 4월 15일 예술의전당. (031)228-2814
스승인 피아니스트 김대진 교수(오른쪽)가 독주와 실내악, 해설과 지휘까지 끝없는 영역 확장을 꿈꿀 때, 제자 김선욱은 한 해 가장 많은 협연을 소화하며 레퍼토리 확장을 꿈꾼다. 이들의 꿈과 욕망의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 '레퍼토리 확장' 노리는 제자 김선욱 

도대체 지난해 연주 무대가 얼마나 됐는지 물었다. "2년 전에는 3~4번 정도로 연주가 별로 없었죠. 지난해 독주회를 포함해서 40여 차례는 무대에 선 것 같아요. 딱 10배 늘어난 거죠."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지난해는 저 자신을 실험하는 한 해였다"고 했다.

급격히 체급을 올리고 있는 그가 매달리고 있는 과제는 레퍼토리 확장이다. 리즈 콩쿠르 우승 당시 결선 곡이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시작으로 ▲베토벤 협주곡 4·5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쇼팽 협주곡 1번까지 국내외 교향악단과 사실상 1년 내내 협연했다. 이달 영국 BBC 필하모닉의 내한 공연에서도 베토벤 협주곡 3번으로 무대 레퍼토리를 추가한다. 이 협연 이후 오는 7월쯤 영국 런던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소화할 수 있는 협주곡이 22곡쯤에 이르지만, 쇼팽 협주곡 2번과 그리그·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등 자신의 레퍼토리에 추가해야 할 곡은 여전히 많다고 했다.

"한 달이면 새로운 곡을 배우기에 짧은 시간은 아니에요. 하지만 무대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손에 익히고 충분히 표현할 자신이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죠."

처음 그는 베토벤과 브람스 등 고전적 레퍼토리로 또래의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차별성을 꾀했다. 하지만 늘어나고 있는 연주 곡목 속에서 개성이나 정체성이 흔들릴 위험은 혹시 없을까.

"놀이 기구를 타기 전에는 무섭지만 막상 타보면 재미 있잖아요. 해보기도 전에 미리 스스로 잘라내는 것이 더 두렵죠."

자신의 소화력을 믿는다는 이야기다."음악을 의무나 직업으로 대한 적은 없다. 오히려 삶의 특권이라고 여긴다"는 스무 살 청춘에게는 연주도, 레퍼토리 공부도 아직은 즐거움인 듯했다.

▶김선욱 협연 BBC 필하모닉 내한공연: 25일 예술의전당,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