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뮤지컬 '라디오스타' 정성화 “내 얼굴? 재밌고 매력 있잖아요"

  • 서일호 기자
  • 손유정 인턴기자·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3년

입력 : 2008.02.27 15:08 | 수정 : 2008.03.01 17:01

photo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영화로 먼저 사랑 받은 ‘라디오스타’가 뮤지컬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라디오스타’(3월 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는 한물간 가수 최곤(김다현)과 매니저 박민수(정성화·서범석)가 강원도 영월의 한 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작품에 출연 중인 배우 정성화(33)씨는 ‘아이 러브 유’ ‘올 슉 업’ ‘맨 오브 라만차’ 등에 이어 뛰어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기자가 공연장을 찾은 지난 2월 9일에는 가수 이문세, 배우 송일국 커플, 남경주 부부, 추상미 부부 등이 객석에 모습을 보였다. 그 중 남경주씨는 정성화씨와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함께 출연한 인연이 있다. 정씨는 “남경주 선배를 매우 좋아해요. 나이 들면서 실력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자기 관리도 잘 하고. 또 김다현, 김우형, 조정석 등 후배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아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자리잡은 정성화씨는 원래 개그맨이었다. “대학에서 개그동아리 회장을 했어요. 저희 공연을 본 신동엽 선배가 1993년 SBS PD를 소개해줘서 ‘기쁜 우리 토요일’에 출연하게 됐어요. 이듬해 SBS 3기 개그맨이 됐죠.”


그는 서울예대 연극과 93학번으로 배우 김수로, 이종혁, 이필모 등이 동기이다. “고등학교(인천 대공고) 2학년 때부터 개그맨을 지망했어요. 학교 행사 사회를 많이 봤고 웃기는 애로 전교에 소문이 났죠. 고3 때는 교장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예능 장학금을 만들어줄 테니 학원을 다니고 연극영화과에 가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MTM을 다녔고 서울예대에 진학하게 됐죠.”


개그맨이 된 정씨는 SBS ‘열려라 웃음 천국’ ‘기쁜 우리 토요일’ ‘코미디 전망대’ 등에 출연했고 1999년에는 ‘카이스트’로 드라마에 등장했다. 이듬해에는 ‘가스펠’로 뮤지컬 무대에도 데뷔했다. “2002년 ‘아일랜드’(표인봉 연출)라는 2인극을 했는데 뮤지컬 제작자인 설도윤씨가 보고는 함께 작품을 하자고 제안하셨어요. 그래서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출연하게 됐고 뮤지컬에 푹 빠지게 됐죠.”


이후 그는 ‘컨페션’ ‘올 슉 업’ ‘맨 오브 라 만차’ 등 수작(秀作)들에 잇따라 등장했다. “작품 운이 좋았어요. 물론 오디션을 거쳐 출연하게 됐지만요. ‘맨 오브 라만차’의 경우는 산초 역으로 제안이 들어왔는데 돈키호테 역이 해보고 싶어서 돈키호테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어요.”


정씨는 ‘맨 오브 라만차’에서 조승우씨와 더블캐스팅되어 돈키호테를 연기했는데, 주변에서는 조씨와의 경쟁에서 그가 도태될 수 있다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로 끝났다. “처음부터 경쟁이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각자의 색깔이 다르니까. 다행히 제게 잘 맞는 작품이라 많은 사랑을 받았죠.”


주변의 걱정과 달리 그는 오히려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을 받게 됐다. “일본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어요. 일본 공연에서 기립박수가 나올지는 몰랐죠. 공연 후에는 유카타를 입은 관객들이 한국어로 ‘사인해주세요’라고 외치는데 정말 짜릿했어요.”

(좌)뮤지컬 '라디오스타' /(우) 영화 '라디오스타'

정씨는 자신이 잘생긴 배우는 아니지만 매력을 발산하는 배우가 될 수는 있다고 했다. “미남 배우에게 팬이 몰리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연기를 잘하면 이 얼굴도 잘 생겨 보이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열심히 연습하면 사람들의 미적 감각도 바뀔 거라고 믿는 거죠.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매력이기 때문이에요.”


그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공연장 근처로 집을 옮기면서 연습에 전념하고 있다. “집이 부평이라 멀어서 그래요. 조금이라도 더 자고 충전하기 위함이죠. ‘맨 오브 라만차’ 때는 LG아트센터 근처에 월세방을 얻었고, ‘컨페션’ 때는 충무아트홀 인근 여관에서 묵었어요.”


최근에는 대학로에 뮤지컬 대본을 쓰는 사무실도 만들었다. “후배와 함께 마음껏 상상을 하며 작품을 써요. 로맨틱한 이야기, 감동적인 대작 등을 쓰면서 우리끼리 즐거워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겠죠. 하하.”


정씨는 가끔씩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의 연기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체크한다. “늦은밤 검색창에 제 이름을 넣어보죠. 처음에는 악플이 발견되면 매우 화가 났지만 이제는 담담해요. 제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잖아요. 가능하면 좋은 평가를 보며 잠드는 편이죠. 그게 숙면에 좋잖아요.”


이어 그는 작품 섭외가 끊이지 않지만 한동안 일이 없어서 마냥 쉬던 시절을 떠올렸다. “집에서 나와 배우 생활을 하던 중이었는데 1년 이상 아무런 섭외가 들어오지 않았어요. 돈이 없어 전기료를 못 낼 정도였죠. 하루는 집에 누워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다음날 전기를 끊겠다고 말이죠. 설마 했는데 전기가 끊겼어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는 정말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본가로 들어가 충전하고 다시 나왔죠.”


정씨는 ‘라디오스타’가 끝나면 3월 말부터 하희라씨와 함께 뮤지컬 ‘굿바이 걸’에 출연한다. “그 동안 가장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 닐 사이먼 작품이었어요. 언제 기회가 올까 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왔네요. 그것도 하희라 선배와 함께 말이죠.”


그는 뮤지컬 이외에도 영화 ‘황산벌’ ‘오로라 공주’ ‘도마뱀’ 등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에는 박중훈 선배와 함께 출연했어요. 박 선배가 나온 ‘라디오스타’를 보고 뮤지컬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출연제의를 받고 너무 기뻤죠. 박중훈·안성기 선배도 뮤지컬을 보고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뮤지컬 ‘라디오스타’의 예술감독은 새 정부 문화부 장관으로 내정된 유인촌씨가 맡고 있다. “배우들의 디테일한 면을 잘 잡아주세요. 저도 캐릭터 설정에 큰 도움을 받았죠. 앙상블부터 주인공까지 개연성 있는 인물로 만들어주세요.”


그는 자신을 ‘인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신동엽·설도윤·남경주·박중훈·유인촌씨 등 매순간마다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켜주는 선배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씨가 개그맨을 거쳐 배우를 안 했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요리사가 되어있을 것 같아요. 군대 있을 때 취사병이었거든요. 이후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지금도 한식 요리를 잘하는 편이에요. 요리도 연습을 통한 창작이니까 연기와 비슷한 점이 많죠.”


그는 개그맨을 거쳐 뮤지컬 배우로 왔기에 장점이 많아졌다고 한다. “개그맨을 했던 이력 때문에 순발력이 강한 편이에요. 연습할 때 아이디어를 많이 내죠. 하지만 다시 TV 오락 프로그램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물론 드라마는 하게 될 것 같지만 말이죠. 저는 지금 배우로서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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