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실제 인물·사건 소재로한 사회극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02.14 00:19

[리뷰] 연극 '블라인드 터치'
교도소에서 28년을 산 남자… 16년을 기다린 여자…

교도소 독방에서 28년을 산 남자(이남희)가 가석방돼 집으로 돌아온다. 그와 옥중결혼하고 16년을 기다린 여자(윤소정)가 말한다. "당신 얼굴 만져봐도 돼요?" 16년 만에 처음 만져보는 것이다. 부부지만 모든 게 낯설다. 열 살 연상인 여자는 "이제 둘이 됐으니까 TV도 두 배 큰 걸로 바꿀까?" 농담을 던지지만 남자는 리액션이 안 될 정도로 세월의 공백이 크다.

이 연극 '블라인드 터치'(연출 김광보)는 일본 작가 사카테 요지(坂手洋二)가 실제 인물과 사건을 재료로 만든 사회극으로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블라인드 터치'라는 2인조 밴드에서 활동했던 남자는 오키나와 반환협정 반대 시위 주동자로 몰려 수감됐다가 이제야 풀려난 것이다. 얼어붙어 멈췄던 시계가 28년 만에 녹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상황. 부부의 변화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블라인드 터치’에 출연하는 윤소정(왼쪽)과 이남희. /산울림소극장 제공

지난해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배우 윤소정이 1년 만에 출연한 작품이다. 자의식 강한 인물을 주로 맡았던 윤소정과 화술이 톡특한 이남희는 안정된 연기력과 호흡을 보여줬다. '블라인드 터치'는 아무렇게나 건반을 누른다는 뜻이다. 두 배우가 '독수리 타법'으로 설렁설렁 연주하는 피아노가 어떤 음악을 빚어내는 순간이 인상적이다. 작품의 결을 잘 드러내는 김광보의 연출, 관객에게 감옥을 대리체험하게 하는 무대(박동우)도 호평받았다.

산울림소극장의 해외 문제작 시리즈 첫번째 작품이다. 가벼운 코미디로 흐르는 요즘 우리 연극동네의 트렌드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용감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관객과 접촉하는 표면적이 넓지는 않다. 20일과 22일 공연엔 원작자 사카테 요지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3월 16일까지 산울림소극장. (02)334-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