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매장을 사랑방 삼아 바그너의 진수 맛본다

  • 김성현 기자
  • 정남이 인턴기자

입력 : 2008.02.11 23:56

강남구 신사동 '풍월당' 매달 한번씩 오페라 강좌

한국 최고의 바그너(Wagner) 강좌는 음반 매장에서 열린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음반점 '풍월당'. 의사이면서 한국바그너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씨가 매달 한 번씩 바그너의 오페라를 곱씹어서 청중에게 들려준다. 지난달 29일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해설한 바그너 강좌는 올해 말까지 계속된다.

"사실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욕을 먹을 만합니다. 어려운 음악을 듣는다는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해서 남들을 무안주기 좋아하고, 마치 자신이 그 작품을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굴거든요."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왼쪽)씨가 서울 신사동의 음반점 풍월당에서 바그너 강좌를 마친 뒤, 수강생들과 바그너 음반들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평화 인턴기자·연세대 응용통계학과 2년
바그네리안(바그너 애호가)의 솔직한 자기 고백에 객석에서 폭소가 나왔다. 유씨는 "보통 다른 오페라보다 2배는 길기 때문에 바그너 오페라는 일반인에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졸아도 될 곳과 졸지 말아야 할 곳을 알려드리는 데 목적을 두겠다"고 말했다. 다시 웃음이 터졌다.

시작은 겸손했지만, 강의가 진행되면서 오페라와 영화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종횡무진 해설'에 청중들은 자연스럽게 바그너에 빠져들었다. 청년 바그너가 발트해를 항해하면서 오페라의 영감을 얻은 대목에서는 북유럽 바다의 격렬한 풍랑을 직접 영상으로 보여줬고, 작품의 배경인 유령선에 얽힌 전설을 소개할 때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주요 장면과 비교하기도 했다. 1843년 드레스덴 초연 당시와 훗날 파리 공연에서 이 오페라의 서곡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짚어주자, 주부 최희정(41)씨는 "여러 가지 버전을 직접 비교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풍월당의 바그너 강좌.
음반점에서 클래식 강좌가 열리는 현상은 인터넷의 확산이나 음반 불황과 깊은 연관이 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손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시대에, 거꾸로 온라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오프라인 매장만의 정감을 되살리려는 시도다. 풍월당 최성은 실장은 "음반점을 직접 찾는 손님들은 단지 음반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일종의 커뮤니티를 꾸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 음반점은 음반 판매와 다양한 음악 강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음악계에서 "산학(産學) 협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오페라는 바그너의 다른 작품에 비해 짧지만, 중간 휴식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공연 직전에 음료나 주류를 지나치게 과음하는 건 절대 금물"이라는 유머 섞인 해설과 함께 2시간 30분에 이르는 강의는 끝났다. 유씨는 "마치 건물의 기둥을 세우듯이 해설을 통해 오페라 감상의 포인트를 잡아놓으면 언젠가는 작품 전체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올해 이 음반점에서는 박종호·유정우·김문경 등 인기 음악 칼럼니스트와 함께 이탈리아 오페라, 바그너 오페라, 유명 교향곡 해설 시리즈를 매달 6~7차례 정도 진행하고 있다.

이달 강좌는 이미 모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 홈페이지(www.pungwoldang.co.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