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1.15 00:13 | 수정 : 2008.01.15 00:14
잊히지 않을 미술작가, 잊을 수 없는 건물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요즘처럼 폭발적인 때가 없었다. 미술시장은 기록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이 생산하는 정보만 부각되다 보니, 화랑과 경매회사가 아닌 비영리 조직·기구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하반기에 김달진 미술연구소와 함께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작가들', 그리고 '2008 미술품 전시의 베스트 건물'이라는 두 가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작가들'을 묻는 설문조사(작년 12월 20~31일)에는 미술평론가, 큐레이터, 미대 교수 20명이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외에서 활동을 하는 한국 생존작가 중 미래에도 잊히지 않고 기억될 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3~5명씩 추천했다. 전문가들은 '미술사적인 가치' '국제적 인지도' '독창성' '작가정신' '조형미' 등이 추천 기준이라고 밝혔다.
최근 국내외 미술계에서는 이런 설문조사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세계적 미술월간지 '아트뉴스'는 작년 11월호에서 창간 105년을 맞아 '105년 후에도 기억될 작가'를 설문 조사 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 한 미술잡지도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미술계의 파워인물을 조사해 발표한다.
'2008 미술품 전시의 베스트 건물'을 묻는 설문은 작년 9~12월에 걸쳐 실시됐으며 평론가, 큐레이터, 교수들뿐 아니라 화랑운영자, 컬렉터 등도 포함해 미술관계자 60명이 참여했다. 그들은 기업사옥, 호텔, 은행, 병원 등 일반인에게 공개된 건물 중 미술컬렉션이 좋은 건물을 추천했다. 두 가지 설문 조사를 통해 복수로 추천된 작가와 건물들을 몇 차례에 나눠 무작위로 소개한다.
현대인의 삶과 밀접한 철학적 주제를
일상 오브제 속에 담아내 남다른 깊이 인정받아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잊히지 않을 작가'로 김수자 (51)를 꼽은 이유 중엔 "국제 주류미술계에서 인정 받았다"는 게 가장 많았다. 홍익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대부터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을 받았다. 1990년대 이후 뉴욕 P.S.1/MOMA 미술관, 비엔나 쿤스트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등 세계의 권위 있는 전시에서 수없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2005년에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빌딩 전광판에서 그의 대표적 비디오 작품들이 3개월 동안 상영되기도 했다.
김수자는 이미 존재하는 '오브제'로 설치,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를 한다. "아티스트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게 아티스트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20 세기 초반 마르셀 뒤샹이 와인랙과 남성 소변기를 들고 '레디메이드(ready-made) 예술'을 시작한 이후 많은 현대미술가들이 새롭게 뭔가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해왔다. 김수자는 특히 '명상(meditation)', '떠도는 삶(nomadic life)'처럼 현대인의 삶과 밀접한 철학적 주제를 보잘것없는 일상 오브제 속에 담아내 남다른 깊이를 인정 받았다.
김수자가 가장 즐기는 오브제는 한국 전통의 천을 이용한 '보따리'다. 꽁꽁 싸맨 보따리 속에, 파편화된 인간 삶의 무언(無言)의 요소들이 들어간다. 이런 보따리를 늘어 놓는 설치, 보따리를 트럭 가득 싣고 떠나는 퍼포먼스 등으로 처음 유명해졌기에 해외에서도 '보따리(Bottari) 작가'라 불린다. 나중에 비디오 작품을 하면서도 그는 '싼다(wrapping)'는 행위에 초점을 뒀다.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속에 가만히 서 있는 자신, 흐르는 강물을 조용히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 작품을 통해 그는 "실체가 있는 것들을 실체가 없는 방식으로 싼다는 점에서 나는 비디오 역시 보따리 그 자체로 본다"고 말했다.
추천자들은 "늘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도 김수자를 꼽은 이유로 들었다.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 '크리스탈 궁전(Crystal Palace)' 내부를 빛과 음향으로 바꿔버린 설치작품 '호흡: 거울여인(To Breathe: A Mirror Woman)'은 그가 지금까지 했던 작업의 개념을 모두 넣으면서 외형은 완전히 새로웠던, '장소 특수적(Site-specific)' 작품으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홈페이지(www.kimsooja.com )에서도 볼 수 있다.
'원형질'이란 독자적 조형 언어로 현대미술 방향 제시
한 미술작가가 미래에도 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그가 현재 우리 미술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박서보(77)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로 볼 때 그의 예술세계가 먼 미래에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박서보는 50년대 후반 한국현대미술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는 전환적 시점에 등단해 미술계에 자신의 존재를 굳건히 세웠다.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 한국미술은 '뜨거운 추상미술의 전개'라는 혼란기에 처 해있었다. 이 때 박서보는 '원형질'이라는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구현함으로써 미술사의 전개에서 누구보다도 앞서 갈 수 있었다. 박서보는 자신의 개별 작업과 우리미술의 진로가 어떻게 연관 되느냐를 끊임없이 진단하고 자기검증을 해, 개인으로서의 발전과 동시에 전체의 성숙에 영향을 끼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70년대에 들어와 시도된 '묘법' 시리즈는 그의 중년기 성숙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것은 개별의 성과이면서 동시에 우리 미술의 동질성과 정체성 추구라는 공동의 성과를 이룬 것이었다. 박서보가 이끈 단색파 또는 백색파는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최초의 에콜(유파)이랄 수 있다. 그의 후반기는 '묘법'의 새로운 변주를 통해 또 한 번 자기 성숙을 도모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