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1.11 18:47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 경제, 문화 등 기존의 가치를 전복할 만한 전환이 미술화단에서도 반영된다. 1920년경부터 40년대 초까지 크게 발전되었던, 이를테면 말레비치, 칸딘스키, 들로네, 몬드리안과 같은 화가들의 기하학적 추상형태에 대한 천착이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이른바 절대논리로 믿어진 과학기술의 논증과 확신에 대한 회의가 불확실성과 우연성에 시선을 돌리기 시작해 미술가들도 내면의 자발성과 본능에 의한 감정의 분출로 우연적 효과에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대표적인 미술운동으로 뉴욕화단이 중심이 되어 미국의 위상을 상징하는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가 탄생하게 된다.
훌륭한 화가들이 대개 그렇듯이 특정 예술사조에 영향을 받은 후 자신의 계속되는 창조과정 속에서 기왕의 예술사조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독자적인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화가 김보현 또한 이 시기에 뉴욕화단에서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았고 그 이후 창작열과 생애속의 굴곡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인다.
김보현의 1950년대 초에 그려진 인물화를 보면 사실적인 묘사위에 지루함을 벗어나려는 듯 산뜻한 붓터치로 보색을 부각하여 표현함으로써 대상이 사라지는 추상세계를 예감하게 한다. 이 후 추상표현주의에 동참하게 되고 열정과 고뇌, 번민으로 인한 자유에 대한 희구가 이 시기의 그의 화풍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다소의 고무적인 측면, 즉, 일필휘지의 서예적 기법을 살려 동양의 선과 여백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폭 속에서 그의 고뇌와 열정의 자아는 이물질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자아라기보다는 다소 불순물과 함께 노골적으로 방출하는, 이른바 하드에지(Hard-Edge)로 표현한 것에 가깝다. 그 것은 붓터치와 질량감, 그리고 강렬한 제스춰와 드리핑(Dripping) 또는 액션페인팅(Action-Painting)과 같은 효과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그 이후 70년대에 이르러 김보현은 세심한 관찰력으로 일상적이며 생명력 있는 아름다운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차분하고 여유 있는 화풍을 전개해 나간다.때로는 대상의 극사실적인 표현 속에서 성찰로 인한 화가 내면의 정화작용과 소박하고 친근함이 발견된다.
80년대를 지나며 김보현은 인물, 동물, 식물을 통해 선과 악, 기쁨과 슬픔, 나아가 인간과 자연 세계에 대한 포용을 다채로운 그만의 화풍 속에 오롯이 담아내었다. 특히 “아틀리에에서의 백일몽Ⅱ”이라는 작품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원색적인 색감과 태초의 원시적 형태를 통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환희를 절묘하게 표현하여 그 따뜻한 포용력을 약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낙원은 오래전에 파괴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보현은 ‘우리의 미래는 우리 모두가 우리 존재의 중심에 가지고 있는 근원적 장소와 맞닿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
지난 2007년 10월 12일부터 시작해 2008년 1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에서 진행된 이 번 전시는 그의 전 화가인생을 체계적으로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는데 여러 가지 여건상 다시 볼 가능성이 희박함에 그 가치가 더했음을 첨언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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