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단원들보다 늦게 퇴장하는 이유는…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01.04 00:44

지휘 인생 30년 돌아보는 자서전 낸 금난새씨

“지휘라는 천직에 내 인생을 걸 수 있었던 것은 그 날의 실패 덕분이었다.”

지휘자 금난새(60)씨가 자신의 지휘 인생 30년을 돌아보는 자서전 ‘마에스트로 금난새 열정과 도전’(생각의 나무)을 펴냈다. 금씨는 지난 1977년 카라얀 국제 콩쿠르에서 3위 입상한 뒤, KBS 교향악단 전임 지휘자와 수원시향을 거쳐 현재 경기 필하모닉 예술 감독과 유라시안 필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금씨는 16세 때 겪었던 실패가 음악 입문의 동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에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그때 서울예고에 결원이 생겨 추가 모집을 했는데, 낙담한 채 방에만 틀어박힌 내게 부모님은 서울예고 작곡과에 응시하라고 권했다. 그때만 해도 그때의 선택이 내 인생 행로를 바꿔놓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금씨의 부친은 가곡 ‘그네’로 유명한 작곡가 금수현씨다.

금씨는 시청 시무식 콘서트와 7시간에 걸친 마라톤 음악회,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브런치 콘서트’ 등 수많은 기획 콘서트 때문에 아이디어가 빛나는 음악인으로 꼽힌다. 그는 “수원시향 시절 수원시청 직원들이 시무식을 마치고 점심이나 먹을까 하며 강당 문을 나설 때 로비 1층에서 30분짜리 미니 음악회를 열었다. 앙코르 연주곡인 ‘그리운 금강산’이 울려 퍼지자 시청 직원 모두 합창했고, 직원들의 만장일치로 오케스트라 보너스를 100% 인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1993년에는 길어도 2시간 안팎인 클래식 콘서트의 통념을 깨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곡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곡을 7시간 동안 연주하며 마라톤 콘서트 기록을 세웠다. 그는 “클래식 공연에는 청중이 없다고 하지만 청중을 기다릴 게 아니라 찾아가야 한다. 전문 음악홀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항상 참신하고 색다른 공연을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에서도 “단원들보다 늦게 퇴장하는 지휘자”라고 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나가면 박수가 잦아들고 무대에 남은 단원들이 악기를 챙기느라고 어수선한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공연이 끝나면 단원들이 먼저 박수를 받으며 떠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내가 청중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린다”고 했다. 그는 “쇼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쇼라고 해도 단원들을 무대에 남겨놓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스스로 ‘예술 CEO’라고 부르는 금씨는 “연주가 끝나면 항상 청중들에게 설문지를 돌렸고 2002년 한 해만 설문지 3000매를 회수해서 레퍼토리와 공연 아이디어를 짜는 데 활용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관을 꼽는 키워드로 ‘느리고 노래하듯이’라는 뜻의 음악 용어인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