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2.31 08:45
1위 고맙다 신정아!
2007년 비단 공연계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관통한 ‘학력위조 사건’……연루된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남녀노소, 장르 불문. 책으로 쓰면 족히 몇 백 장은 훌쩍 넘을 분량이다.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신정아가 발탁된 게 석연치 않아 시작된 조사였다. 그 무렵 그녀의 예일대 학위가 거짓이고 논문도 표절이라는 의혹이 증폭되었고 동국대 조교수 채용을 놓고도 비호세력을 등에 없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란 추측이 극에 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거침없이 하이킥’ 하던 한 여교수의 사건에 종교계, 정치계, 경제계, 예술계, 학계(더 있을 수도 있다!)가 이토록 조잡하게 엉켜서 딸려 올라올 줄은. 그리고 또 몰랐다. 그녀 말고도 오랜 세월 ‘뻥’치며 살아온 수많은 유명인들이 있을 줄은. 김옥랑, 윤석화, 이창하, 최수종, 주영훈, 최화정, 장미희, 오미희, 강석 등등. 이름이 거론되자 하나같이 잠적하거나 부인하거나, ‘내 잘못 아니올시다~’라며 포털사이트 탓으로 돌리는 행태 또한 참 못났었다.
최근 법원은 김옥랑 대표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단국대 교수채용 과정에선 학위보단 대외 활동이 더욱 중요한 요소였다며. 그녀에겐 고의성이 없었다는 친절한 판결문은 ‘단신’으로 묻히고 있었다. 그게 법적으로 무죄든, 유죄든 이제와 그리 중요치 않다. 다만 이 사회에 난무하는 모럴해저드가 고삼차보다 천배는 쓸 뿐이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환부를 몽땅 도려낼 순 없겠지만, 어찌됐건 백그라운드로 사람 평가하는 이 사회의 고질적 병폐와 권력자를 향한 묵인과 관대함을 발견했으니 그거 하나가 올해 거둔 굉장한 수확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회는 신정아에게 한 번 정도는 고맙다는 말을 해줘야 한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갈 뻔 했잖아’라고 말이다.
그리고 문화일보의 ‘신정아 누드기사’는 이제와 생각해도 백번 잘못한 짓이다.
2위 축제도 겹치기를 해야 하나?
지난 가을, 축제가 너무 많았다. 물론 이를 문제 삼을 순 없다. 중요한 것은 유사한 프로그램의 난립이었고,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비슷한 시기에 축제가 열렸다는 점이다. 과천한마당축제,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세계무용축제, 서울무용제, 성남국제무용제,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난 9월부터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개최됐던 이 수많은 축제들. 생소한 국가의 공연, 쉽사리 내한하기 힘든 유명 해외 단체의 공연 등 놓쳐선 안 될 작품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너무 몰아서 하는 바람에, 제 아무리 행동 빠른 기자며 관객이라도 이 많은 걸 다 볼 순 없었다. 그 와중에 사장된 대학로 소극장 공연은 말해 무엇 할까. 굳이 비슷한 시기, 가까운 장소에서 할 거라면 내년부터 아예 몇몇 축제는 합쳐버리는 게 어떨까? 물론, 주최며 후원사며 다 달라서 처리해야 할 게 많겠지만, 그래도 이대로는 아니다. 장르만 비슷하다면 합체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축제들이여. 재고해보길 바란다.
3위 발레리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주원이 지난 10월 패션잡지 ‘보그(Vogue)’에 게재된 상반신 누드 사진으로 구설수에 오르다 결국 발레단으로부터 1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다. 징계 사유는 단원으로서 외부 활동을 사전에 허락받지 않았다는 점과 사진이 실린 곳이 상업적인 매체였다는 점이었다. 결국 발레단은 발레리나가 ‘옷을 벗었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 아님을 피력하며 누드 자체에 대한 논쟁으로부터는 벗어나고자 했다.
혹자는 이번 사건을 놓고 그녀의 동작이 무용이 아닌 남녀 간의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기에 이 같은 논란이 생긴 것이라 정의 내렸다. 글쎄, 어디까지가 무용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 구분 짓기란 참 모호하다. 단지 여과 없이 몸을 기록하고 싶었고, 순수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고 싶었다는 그녀의 의도는 거짓이 아닌 듯 했다.
그녀는 현존하는 무용계 최고의 스타이다. 불과 일 년 전 발레리나에겐 엄청난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무용수 상을 수상하였고, 기량은 최고조에 이르러 있다. 그녀는 소위 뜨기 위해 발버둥치는 무명씨도 아니었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누드를 찍어야만 하는 연예인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누드 사진은 예술적 측면에서 해석해야 옳고 때문에 그녀는 처벌 받아야 할 만큼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물론 단체의 규칙을 준수하지 못했다는 점이 과실일 순 있다. 하지만 그녀가 만약 보그에 정장을 차려입고 촬영을 했었대도 이것이 징계위원회에 동일하게 회부될 사항일지 매우 의문스럽다. ‘누드’는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왠지 그녀, ‘누드’로 큰일을 치른 게 분명하지 싶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