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집 밖으로 나가 사서 고생 좀 할래요”

  • 박돈규 기자(글·사진)

입력 : 2007.12.27 00:50 | 수정 : 2007.12.27 03:03

대학로 20대 연기파 배우 주인영
그동안 몸담았던 극단 ‘골목길’ 스스로 나와
한일 합작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출연

극단 골목길을 떠나는 배우 주인영은“유랑이 나의 힘”이라고 말했다.
배우 주인영(29)은 짐을 반쯤 싸다 나온 사람 같았다. 대학로가 가장 주목하는 20대 여배우인 그는 “집 밖으로 나가 고생해야 할 때”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집이란 연출가 박근형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을 뜻한다. ‘경숙이, 경숙 아버지’ ‘맨드라미꽃’ ‘선착장에서’ 등 골목길 연극에서 산소탱크 역할을 한 주인영이 박근형과의 한시적 이별을 선언한 것이다.

“전지훈련이려니 생각해요. 날 극한으로 몰아서 아무 도움받을 수 없는 곳에 툭 떨어뜨리는 거. 조이지 않으면 내가 망가질 것 같아서요.”

현재 골목길은 배우들이 가장 몸담고 싶어하는 극단이다. 2003년 주인영이 국립극단 연수단원을 마치고 건너왔을 때 골목길 식구는 6명. 지금은 30명이 넘는다. 최근작 ‘백무동에서’가 골목길 작품답지 않게 출연진이 많았던 건 그들을 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영은 “돈이 들어오자 연극하기는 나빠졌다”고 말했다.

“고생도 공부잖아요. 1년 전만 해도 (고)수희 언니랑 ‘써주기만 하면 노래방 도우미라도 나간다’고 할 정도였어요. 차비가 없었고 라면봉지에 쌀을 모았던 적도 있죠. 그런데 ‘경숙이, 경숙 아버지’가 성공하니 나태해지고 서로 서먹해졌어요.”

주인영은 한일 합작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정의신 작·양정웅 연출)으로 2008년을 연다. 기타노 다케시 주연의 영화 ‘피와 뼈’로 유명한 재일교포 작가 정의신이 쓴 신작으로, 1950~60년대 일본의 곱창집이 배경인 가족 드라마다. 주인영은 집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가수 지망생 미화를 맡았다. 4월 중순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5월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주인영의 ‘가출’은 처음이 아니다. 그가 최고로 꼽는 연극 ‘그때 각각’도 2005년 잠깐 골목길에서 나와 서울연극제 때 올린 작품이다. “주인공보다 관객 마음에 오래 남는 조연에 더 끌린다”고 했다.

“경숙이도 애착이 가는 인물이지요. 상황만 받아 배우들이 대사를 다 만든 작품이거든요. 올해 마지막 공연을 어느 대안학교에서 했는데, 그곳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기력증이라는 말을 듣고 정신 번쩍 났어요. 거기서 다짐했지요. 우린 쉬어야 해! 너무 변했어!”

주인영은 무대 오르기 전 대기실에서 ‘오늘 관객 중 한 명이라도 내 연기에 위로받았으면…’하고 기도한다고 했다. 집중력과 정서가 좋다는 평을 받는 이 배우는 “칭찬 받으면 창피하고 두렵다”고 말했다. “고생 그만하고 공무원 시험 보라”고 타이르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