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2.21 10:26
관객석과 높이의 차가 거의 없는, 긴 언덕 모양의 무대. 그리고 차례로 등장하는 세 남자. 연극은 이들의 9살 어린 시절로 돌아가 19살 고교 시절, 지금의 29살까지를 역순으로 보여준다. 다 큰 성인 배우들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9살 아이를 연기하자관객석 여기저기서 단발마적인 폭소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들 앞에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 ‘원석’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19살이 된 민호와 은철, 봉구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지만 음악적 취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석을 밴드에서 강제 탈퇴시키고, 원석은 자살한다.
그리고 10년 후. 각자의 삶 속에 기억은 왜곡되어있고, 관계는 정의되어있다. 민호에게 원석은 ‘불행한 삶을 살다간 중증 우울증 환자’로, 은철에게는 ‘독창적인 천재 동화작가’로, 봉구에게는 ‘유명을 달리한 어릴 적 친구’로. 세 남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죄에 공소시효를 정해놓았다. 이들은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고 발가벗기며 스스로의 죄를 유보하고, 서로의 공소시효를 수정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달을 뿐이다. 얼핏 우정에 대해 말하려는 듯 했던 연극은 우정의 본질, 나아가 관계의 본질을 포악하게 고발한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와 타인은 적대관계에 있다. 하지만 나는 타인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타인의 주체성을 통해 내가 주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주체성을 인정받으려 할 때, 나는 애정관계에 돌입한다. 그러나 사랑은 나의 주체성을 포기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내가 타인의 소유자로 떨어질 운명임을 뜻한다.” 상대에게 다가가려면 자신의 자성(磁性)을 포기해야 하는 자석의 운명.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원석은 타인과 관계 맺기 위해 자신의 자성을 포기한 ‘나쁘지만 착한’ 자석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살아남은 세 남자는 여전히 서로를 밀치고 끌어당기는 ‘나쁜’ 자석, 바로 인간이요, 내가 아니었을지.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