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잡는 제품은 그만… 디자인도 재밌어야 빛나죠”

  • 김미리 기자

입력 : 2007.12.21 00:31 | 수정 : 2007.12.21 02:53

디자이너 박진우

얼마 전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의 터줏대감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 곁에 특이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설치됐다. 눈 결정체 모양 태엽이 쉴새없이 돌아가고, 깡통 로봇이 사방을 지킨다. 작품명 ‘크리스마스 팩토리(factory)’.

“이 세상 어딘가에 아무도 모르게 크리스마스를 생산해내는 공장이 있지 않을까요?” 작품을 만든 디자이너 박진우(34)씨가 ‘워홀(Warhol)’이라고 쓰여진 짝퉁 루이뷔통 명함지갑을 만지작거리며 엉뚱한 상상을 던졌다.

박씨는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주목받는 영 디자이너. 사실 한국 이름 ‘박진우’ 보다 ‘Zinoo Park’ 으로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풍자와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최고의 디자인 잡지로 꼽히는 네덜란드 ‘프레임(Frame)’으로부터 올 초 ‘주목받는 디자이너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박물관에 진열된 디자인 작품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디자이너 박진우씨. 광화문에 설치된 자신의 작품‘크리스마스 팩토리’앞에 섰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박씨는 서울대 공예과와 영국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RCA) 제품디자인학과 대학원을 거친 뒤 2003년부터 2년 동안 삼성전자에서 제품 디자인을 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못 말리는 크리에이티브 정신을 감당할 수 없어 조직을 뛰쳐나와 독립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됐다.

그에게 ‘유머 빠진 디자인’은 ‘앙꼬 없는 붕어빵’. “진지함은 유머러스하게, 유머는 진지하게 표현하는 의외성”이 본인이 말하는 ‘박진우표’ 디자인의 핵심이다. 전 세계에서 3만개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5분 양초(5 minute candles)’를 비롯해 ‘스파게티 샹들리에’ ‘페이크백(fake bag)’ 등 다른 작품에서도 그만의 기지는 빛난다.

별명은 ‘코카콜라 보이’. RCA 시절 스승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론 아라드(Ron Arad)가 그의 ‘코라콜라 집착증’을 보고 붙여줬다. 1996년부터 코카콜라 병으로 만든 작품만 50여 개다.

요즘 방영 중인 KBS 2TV 월화드라마 ‘못된 사랑’에서 팝 아티스트로 나오는 주인공 권상우(강용기 역)의 직업 모델이 바로 박씨. 그가 만든 ‘스파게티 샹들리에’는 폐교를 개량한 작업실에 걸려 있다. 극이 진행되면서 그는 권상우를 ‘대신해’ 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얼마 전 그는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를 그러모아 ‘F.A.S.T.(Fantastic Artistic Seoul Team)’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박씨는 “아티스트들이 함께 해외 유명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네널란드의 ‘드룩디자인(Droog Design)’, 이탈리아의 ‘멤피스 그룹(Memphis Group)’처럼 디자인 역사에 획을 그을 수 있는 한국의 문화집단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박진우의 작품들 

1. ‘5분 양초(5 minute candles)’= 전 세계에 3만개 넘게 팔린 대표작. 겉은 성냥갑처럼 생겼는데 열면 양초가 들어 있다. “생일, 기념일 외우기 젬병인 이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점수를 딸 수 있는 제품”이란 게 박씨의 설명. 지난 2001년 영국왕립예술학교(RCA) 재학 시절 ‘일회용품 만들기’ 과제를 통해 탄생된 제품이다. 가격은 미국선 9달러, 국내선 6000원대.



2. ‘스파게티 샹들리에’= 전구의 빨간 전선을 스파게티 면발처럼 축축 늘어뜨려 만든 조명. ‘프레임’의 알렉산드라 온더워터(Onderwater) 편집장이 “둔감증에 걸린 디자인 전문가들이 ‘와우’ 탄성 짓게 한 작품”이라고 호평했던 작품이다. 가격은 150만~200만원대. 샹들리에의 전구를 하나만 떼서 벽걸이 형태로 만든 버전인 ‘고리고리 라이트’도 있다. 10만원대.



3. ‘페이크백(fake bag)’= 짝퉁 루이뷔통 백을 풍자해 만든 작품. 캔버스 가방 위에 ‘가짜’(fake)라는 낙인이 찍힌 채 원색으로 변신한 루이뷔통 백이 프린트돼 있다. 5만~8만원대.

박씨의 제품은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앞에 있는 인테리어숍 ‘세컨드 호텔’과 인사동 쌈지길 ‘아트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