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12.20 09:07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
現 한국예술종합학교 기악과 재학 중
2002년 이프라 니만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주니어부 2위 입상
2004년 Ishikawa Music Academy Encouragement Award 수상
국제 메뉴힌 콩쿠르 주니어부 3위 입상
2005년 Ishikawa Music Academy IMA 음악상 수상
2006년 Lotos Mozart Prize Gdask 1위 및 특별상 수상
영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콩쿠르 그랑프리 및 창작곡상 수상
‘음악 영재, 바이올린을 위해 태어난 신동’ 등으로 압축되는 그녀의 수식어들을 만났다. 문득 그녀의 음성이 떠올랐다.
“저에 대해 좋게 써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실은 많이 민망해요. 기사에선 제가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잖아요. 그게 너무 낯설어요. 출석 잘하고 과제 제출 성실히 했더니 학점을 좋게 주신 건데 ‘신동, 대학 성적도 올A 이상’, 그러면서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걸 놓고 ‘영재성의 비결은 엄청난 독서량’, 취미로 수영을 시작했다니까 ‘그녀의 체력은 꾸준한 수영 덕분’까지(하하), 특별할 것 없는 제겐 과분한 찬사였죠.” 그랬다. 그녀를 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급한 영웅화의 오류’를 범하고야 말았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유치원의 ‘1인 1악기 원칙’에 따라 우연히 시작하게 된 바이올린. 아버지가 엄청난 클래식 애호가라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자연스레 노출되어 있었고 장유진의 귀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거장의 악보를 담아둘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그녀는 조기교육의 수혜를 입은 또래의 친구 혹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콩쿠르에서 수차례 입상, 예비과정을 이수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학 후 네 학기 째 전액 장학금, 2006년 영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대상, 2007년 이반 피셔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와의 협연까지. 생각의 차이일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이력에 대해 특별함과 평범함을 논한다는 것은.
“유별나지 않았어요. 연습도, 가족들의 기대도, 나 자신의 마음가짐도.” 단지 팽팽한 현에서 잉태된 오묘하고도 섬세한 음률이 소녀의 일상에 시나브로 배어들었던 것뿐이었다. 조급함도, 과도함도 경계한 채 살았더니 조금 이른 나이에 대학에 들어왔고, 김남윤이라는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사사할 행운도 생겼다. 국내에서도 충분히 배울 수 있기에 유학은 당분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장유진은 10살 무렵부터 그녀를 가르친 김남윤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순수한 미소와 함께 드러냈다.
연주회 때마다 본인의 악기를 선뜻 내주고, 현재의 상태를 세심하게 점검해주는 선생님의 곁에서 그녀는 안도감을 느끼고 성장의 의지를 다져가는 중이다. 장유진은 그녀를 평가하는 수많은 시선들로 인해 들뜨지도 침잠치도 않을 것이며, 다만 음악적 감성과 기량을 충분히 키워나갈 계획이다. 그것이 천재가 아닌, 음악가가 걸어가야 할 숙운이자 정도(正道)인 것을, 소녀는 분명히 알고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