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오페라가 야해졌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7.12.20 02:04

상반신 노출에 목욕신까지
‘듣는 오페라’에서 ‘보는 오페라’로 점차 변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선 란제리 쇼 방불

지난 6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리체우 극장.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 2막에서 여 주인공 마농 역을 맡은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Dessay)는 목욕 가운 하나만 걸치고 무대에 나왔다.

당초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남녀가 함께 편지를 읽는다는 설정이다. 드세이는 먼저 욕조 속으로 들어가 하녀의 도움을 받아 몸 씻는 장면을 연기했다. 1분 남짓의 짧은 장면이지만 드세이는 이 대목을 위해 리허설에서도 상반신을 노출하고 수 차례 반복 연기했다.


보수적이고 고전적이던 오페라가 과감한 노출을 사리지 않고 있다. 연출 효과를 위해 대담한 장면이나 연기를 아끼지 않고, 주역만큼은 ‘노출 사절’이라던 등식도 깨지고 있다.

오페라‘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 출연한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최근 그가 주연을 맡은 오페라‘마농’에서 상반신이 드러나는 목욕장면을 소화해서 화제를 모았다. /EMI 제공
2002년 11월 이탈리아 베니스의 라 페치네 극장. 역시 마스네의 ‘타이스’ 가운데 동명(同名) 주인공 역을 맡은 소프라노 에바 메이(Mei)는 2막에서 아리아 ‘사랑이란 고귀한 것’을 열창했다. “재물은 모두 버리겠지만 사랑의 정표만은 지니게 해달라”고 호소할 때, 속이 훤히 비치던 왼쪽 상의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메이는 가슴 노출에도 자연스럽게 5분 여간 계속 노래했다.

초절 기교의 고음으로 세계 최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꼽혔던 드세이는 2002년 1월 프랑스 리옹에서 공연된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도니체티)에서도 “무대에서 절반은 벗은 채로 있었지만 노래에 몰입한 나머지, 의상이 흘러내리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오페라가 점점 야해지고 있는 건, 무엇보다 ‘듣는 오페라’에서 ‘보는 오페라’로 음악 시장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취용(聽取用) 오페라 전곡 음반은 급감하고 있는 반면, 영상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페라 영상물(DVD)과 극장 상영, 위성 중계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오페라를 둘러싼 미디어 환경 자체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란제리 회사의 협찬을 받아 여성 출연진 대부분이 속옷 차림으로 등장했던 모차르트의 오페라‘돈 조반니’. 주역 돈 조반니는 바리톤 토머스 햄슨(앞쪽)이 맡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조직위
이 때문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동등할 정도로 연출가의 위치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리체우 극장에서 ‘마농’을 맡았던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카(McVicar)는 이미 2000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리골레토’(베르디)를 연출하면서 남녀 성기 노출을 포함해 집단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과감한 1막 설정을 선보였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연출 마틴 쿠세이)를 무대에 올리면서 란제리 회사의 협찬을 받아 주연을 제외한 여성 출연자 대부분이 속옷 차림으로 등장해 ‘란제리 쇼’를 연상케 했다.

보수적인 음악 팬들이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정작 오페라 글라스를 쓰고 무대를 뚫어질 듯 쳐다보는 풍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