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거짓말, 연극처럼만 합시다

  • 김명화 연극평론가·제1회 차범석희곡상 수상자

입력 : 2007.12.15 00:00 | 수정 : 2007.12.15 15:56

[김명화 칼럼] 연극은 가장 고차원적인 거짓…
감정을 좀 숨기고 예의 지키며 시늉이라도 하는 정치판이 되길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면 나는 개막을 앞두고 무대 위를 잠시 혼자 걸어본다. 막바지 연습에 방해가 되지 않게 식사 시간이나 짧은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아무도 없는 빈 무대 위에 배우처럼 서보는 것이다. 공연이 잘되기를 기도하면서 조명 아래 노출된 소도구나 장치를 손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배우들 다치지 않게 잘 부탁해. 관객들 많이 들게 해줘” 실없이 중얼대면서 개막을 앞둔 긴장과 불안함을 달래곤한다.

그러다 문득 무대 뒤로 걸어가면, 그저 몇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도 블랙홀에라도 들어간 듯 다른 세계가 펼쳐져서 아득해지는 경험이 기다린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그럴싸한 응접실이나 화려한 성곽은 사라지고 합판이나 대못이 숭숭 솟은 무대 뒤쪽과 분장실로 통하는 어두운 복도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이물감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방금 전까지 감탄하던 사기도박단의 실체를 얼핏 본 것처럼, 혹은 인간 세계의 비의(非義)를 훔쳐본 것처럼 화려한 무대 뒤의 조악한 현실에 일순간 아연해지는 것이다.
연극은 가면의 예술이다. 사진은‘지킬 앤 하이드’무대에 선 조승우. /조선일보DB
냉정하게 말하자면 연극은 가면과 거짓의 예술이다. 배우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가면을 쓰고 그 가면이 자신인 양 무대에 선다. 가면에 능할수록 사기에 충실할수록 훌륭한 배우다. ‘지킬 앤 하이드’로 무대에 선 조승우가 지킬과 하이드 대신에 정직하게 조승우만 보여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관객들은 그렇게 환호했을까.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의 뒷면에는 가짜를 진짜처럼 탁월하게 소화한 배우의 훌륭한 사기술(?)에 대한 찬탄, 가면과 거짓에 대한 열렬한 욕망이 숨어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의 출발을 인간의 모방욕구로 규정했다. 그 말을 비딱하게 틀면 모방의 욕망은 누군가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기는 거짓의 욕망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가면과 거짓말이야말로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토록 ‘진실하라’를 최고의 덕목으로 간주해 왔지만, 현실세계에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것을 보라. 인간은 타고나길 거짓말쟁이로 타고났다. 사람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Person’은 희랍시대에 배우들이 착용했던 가면을 지칭하는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했다지 않나. 인간들은 가면과 거짓이라는 유전적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고, 현실 세상에선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음에 이르게 될까 봐 ‘진실’이라는 백신을 개발하고 또 한편에선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처방에 따라 연극이라는 가면과 거짓의 예술을 만들고 즐기면서 희희낙락 생을 통찰해 온 것은 아닐까.

가면과 거짓말에도 급수가 있다. 우리는 흔히 가면과 거짓말이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지만, 이 세상에는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치장하고 상대방을 모함하는 원색적인 거짓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현명한 거짓말도 있고 선의의 가면도 존재하며, 거짓인 세상에 거짓을 표지판 삼아 안개 속에 숨어있는 진실을 찾아나가는 고차원적인 영역도 존재한다.

아마 인간이 만들어낸 거짓의 영역 중에서 가장 고차원적이고 아름다운 거짓의 영역이 연극일 것이다. 관객과 배우 모두 자신들이 참여하는 연극이 가짜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진짜인 척 믿어주기에 아무도 다치지 않는 무해한 놀이이고, 게다가 그 가면놀이를 통해서 보편적인 생의 진실에 대해 고민하는 역설적인 거짓의 마당이기 때문이다.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 광기라는 가면을 썼던 ‘햄릿’처럼, 좋은 희곡 안에는 무수히 많은 가면 쓰기와 가면 벗기기의 내용들이 존재한다. 극장이 곧 세상이라고 믿었던 연극인들은 모든 것이 가짜인 극장에서 거짓을 매개 삼아 세상을 해부하고 풍자하고 반영해온 것이다.

아마도 지난 세기의 역사가 불행하고 다급해서 그렇게 된 일이겠지만, 거짓말에 관한 한 현재 우리들의 수준은 대단히 성숙하지 못하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BBK공방전을 비롯해서 배제하고 살아남고 이기기 위한 거짓말만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이 난공불락의 원색적인 거짓의 나라에서 ‘진실’이라는 말은 이제 효력을 상실한 구호처럼도 들린다. 그러니 ‘진실’이라는 구호 대신 좀 더 고차원적인 거짓말을 하자는 제안은 어떤가. 원색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아무리 다급하고 싫더라도 그 감정을 숨기고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예의를 차리는 시늉만이라도 하는 매너 있는 거짓말쟁이가 되라는 말이다.
김명화 연극평론가
이제 곧 대선이다. 정치판에서는 마치 이번 대선 후에는 더 이상의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듯 격렬하게 싸우고 있지만, 대선 이후에도 역사는 계속될 것이고 승자와 패자 모두가 이 땅에서 공존해야 할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승자에게는 관용의 가면이 필요하고 패자에게는 승복의 가면이 필요하다. 멱살만 잡지 않았을 뿐 원색적인 공방전을 벌이는 정치가들이 과연 조승우처럼 노련하고 미끈하게 그 가면들을 착용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면 극장에 자주 들러서 연극을 관람해주기 바란다. 마침 세모에 대선까지 겹쳐 연극 동네에 관객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