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일본서 온 ‘흑산이’… 마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7.10.05 23:53 | 수정 : 2007.10.06 15:58

연극 ‘코끼리와 나’

연극 ‘코끼리와 나’(이해제 작·연출)를 보러 간 관객은 공연장 로비에서부터 드라마를 만난다. 한쪽에 전시 중인 길이 3.3m, 높이 2m 몸집의 코끼리 박제다. 안내문엔 ‘1965년부터 동춘서커스단에서 활약한 코끼리 제니(암컷)’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인도코끼리 제니는 물구나무 서고, 하모니카 불고, 시멘트공 위에서 춤추며 ‘동춘 황금기’를 낳은 천막극장 시절의 스타였다. 1980년 죽어 박제된 제니가 서커스단 창고에 방치되다가 모처럼 관객과 재회한 것이다. 도둑맞은 상아 대신 나무로 해 넣은 가짜 상아, 플라스틱 눈망울이 쓸쓸하다.

제니를 불러낸 ‘코끼리와 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1411년(태종 11년) 일본이 조선왕실에 예물로 바친 한국 최초의 코끼리가 주인공이다. 한국 최초의 코끼리와 한국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코끼리가 나란히 박물관에 들어온 셈이다.

막을 여는 북소리는 돌진하는 코끼리 소음 같다. 일본이 보내온 코끼리 ‘흑산(黑山)이’는 요물인지 영물인지 모를 기이한 짐승으로 비친다. 전국을 뒤져 소문난 소도둑 쌍달(오달수)을 불러오며 이야기는 더 희극적으로 굴러간다. 동물과 인간의 오해와 우정이 그려지고, 흑산이를 악용하려는 음모도 있다.

무대에서 코끼리는 코나 다리 같은 상징적 부위를 과장해 연극적으로 표현됐다. 배우들 여럿이 몸을 합쳐 코끼리 덩치를 만들거나, 긴 코만 극대화하는 식이다. 관객은 신체극으로 코끼리의 움직임과 마음을 그리는 아이디어, 흑산이 대신 쌍달이가 문초를 받고, 똥누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흑산이가 올라선 얼음장이 깨지는 장면 등을 좋아했다. 제니의 삶 같은 스산함이 무대 위 흑산이나 쌍달에게서도 풍겨났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무대가 헐렁하고 비어 보였다. 실연보다 소재나 이미지가 더 많은 말을 하는 연극이다. 직접 쓰고 연출하며 소극장에서 신선한 감각을 보여줬던 이해제와 극단 신기루만화경 배우들은 중극장 무대에선 기대만큼의 밀도를 만들지 못했다. 잦은 암전, 긴 공연 시간, 하고 싶은 이야기와 실제 표현 사이의 틈도 자주 집중을 방해했다.

▶2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1544-5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