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9.28 11:13
'고도를 기다리며'는 베케트가 제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남부 보쿨루스에 숨어 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 속에 있는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만든 것이다.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렇다면 그 기다림은 무엇일까? 60년대 폴란드에서 이 작품이 공연되었을 때,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소련으로부터의 자유였다. 프랑스 지배 하의 알제리 공연에서는 실현성이 희박한 토지개혁이 그들의 고도였고, 미국 생퀸틴 감옥에서 공연되었을 때 죄수들에게 고도는 석방을 의미했다. -마틴 에슬린 (Martin Esslim)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고, 누구도 오지 않는다.
한적한 시골 길,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맞이한다. 그들은 약속한 고도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 지루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부질없는 말장난과 공허한 행동을 반복한다. 그들은 종종 무엇을 하는지조차 망각하기도 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걸까. 적막한 공간 사이로 때마침 포조와 럭키가 들어와 파편 같은 언어를 쏟아 놓는다. 곧이어 고도가 보낸 한 소년이 고도는 오늘 오지 못하고, 내일 올 것이란 메시지를 전해온다. 어쩌면 내일도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려보기로 한다. 가자고 말하지만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비논리적인 세계를 논리적인 틀 속에 가두지 않는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랑스 지하조직원으로 사회에 참여했던 사무엘 베케트는 체포령을 받아 줄곧 은둔과 도피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징역 같은 삶 속에서 불안을 전신으로 겪어야했던 그는‘불확실한 시대 속에서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뇌에 빠지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운신할 기운조차 없던 그가 각오한 듯 써내려간 사유의 결과물인 셈이다. “부조리는 목적이 없는 것이다. 인간은 종교적, 형이상학적, 그리고 초월적인 뿌리로부터 단절되어, 미아가 되었다”라는 초기 부조리 극작가 외진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의 정의처럼 어차피 모든 것이 혼란하고 온전치 않기에, 그 속에서 완전한 형식을 갖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어찌 보면 더 모순적임을 말하고자 했으리라.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블라디미르는 남성적, 이성적이며 에스트라공은 여성적, 감성적 인간형이다. 베케트는 “에스트라공은 땅을 밟고 있으며 돌에 속해 있고, 블라디미르는 빛이고 하늘을 향해 있으며 나무에 속해 있다”라고 말하며 각각 육체와 지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설정했음을 드러냈다. 이것은 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품인 구두(육체)와 모자(지성)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포조와 럭키는 그 외형적인 모습만으로도 종속적 상하관계가 분명히 드러나는 관계이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저놈과 내 처지가 바뀌지 말란 법도 없지. 다 팔자일 뿐이야”라는 포조의 말에서 인간의 운명이란 갑작스러운 우연에 의한 것으로 두 사람의 입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2막에서는 장님이 된 포조가 벙어리가 된 럭키의 도움을 받는 모습을 통해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어버린 두 사람을 나타내기도 한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