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9.17 08:59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
없는 살림에 사채까지 끌어다 과외며 대학 공부며 시켜놨더니, 서른세 살 먹은 딸은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도 관두고 다락방에 들어앉아 노래만 불러댄다. 엄마는 복장이 터질 지경이고 답답한 건 딸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 방송 중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남자친구가 도넛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구박하는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다. 밤늦도록 방송을 하니 늦잠을 자는 건 당연지사고, 백수가 아니라 싱어 송 라이터라고 끈질기게 말해 봐도 돌아오는 건 푸짐한 욕지거리와 빗자루 매질 뿐. 순댓국집 모녀의 살벌, 난감한 관계는 회복될 수 있을까?
뮤지컬 '한밤의 세레나데'는 마주치기만 해도 날카로운 대화가 오가는 모녀인 정자와 지선의 갈등과 화해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축축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돼지 내장에 시뻘건 선지며 당면을 쑤셔 넣는 억척스런 엄마를 본 후론 순대는 입에도 대기 싫은 딸 지선, 음악을 한답시고 하루 종일 방에서 “날 버리고 가시는 님은 성병난다, 골로 간다, 사망 한다” 등의 낯 뜨거운 노래를 불러대는 딸이 못마땅한 엄마 정자. 들깨가루와 청량고추를 듬뿍 쳐 낸 얼큰한 순댓국 한 사발이 펄펄 끓어 넘치는 것 마냥, 두 사람의 대결은 어째 끝을 알 수가 없다.
그 곳엔, 엄마가 아닌 여자가 서 있다.
방송 도중 감전 사고로 26살의 엄마가 살고 있는 과거로 들어가게 된 딸 지선은 낡은 카페에서 통기타 가수로 활동하며 사랑을 키워가는 엄마 정자와 아빠 봉팔을 만나게 된다. 꽃미남 밴드로 영입되는 바람에 갑자기 유명해진 봉팔을 기다리며 속병을 앓는 정자의 곁에서 언니처럼 달래주고 차분히 이야기도 들어주던 지선은 엄마가 아닌 여자로, 정자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별 것 아닌 일상도 그녀들로 인해
극중 지선과 동갑인 서른세 살 ‘언니들’이 모여 만든 '한밤의 세레나데'는 뮤지컬 '빨래'로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 작사·극본상을 수상한 추민주가 제작감독을 맡았고, 오미영, 노선락이 연출과 음악감독으로 합세해 오밀조밀하고 재치 넘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시간을 넘나드는 기발한 발상과 독창적인 무대연출, 유머러스한 대사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소재인‘엄마와 딸의 갈등’에 놀라운 생명력을 선사했다고 해야 할까. 일생을 외로움이라는 커다란 장벽과 홀로 대면해야만 했던 정자의 울음 섞인 삶을 시나브로 헤아려보려는 지선이 “사랑해 엄마”라는 수줍은 고백을 할 때, 무대는 이미 부드러운 세레나데로 흘러넘치고 그녀들의 인생엔 사랑의 음표만이 그득하다.
엄마, 내 마음이 머무는 공간 딸, 내 삶이 맴도는 자리
“이런 것을 낳고도 미역국을 먹은 내가 미련했다!”라며 이제와 후회를 할지라도, “엄마 때문에 내가 못살아!”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도, 결국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서러워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것이 바로 엄마와 딸이다. 남녀 간의 갈등은 서로 다른 행성에서 탄생한 존재(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로 정의 내려 해결했다지만 그보다 더 복잡, 미묘한 관계인 모녀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