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9.14 10:50
연극 '멜로드라마'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와 '김종욱 찾기'에서 관객의 가슴을 따뜻하게 물들였던 연출 겸 작가 장유정이 이번엔 불륜으로 돌아왔다. 누가 볼까 무섭고 들킬까봐 겁나고, 그래서 더 아찔하다는 헤드카피와 함께 등장한 연극 '멜로드라마'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주로 가족과 연애를 주제로 한 통속적이고 감상적인 극을 통칭하는 ‘멜로드라마’라는 진부한 장르명을 굳이 극의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서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감상적인 멜로 한 편 봐야겠다는 생각은 일단 접어두는 것이 좋을 법하다. 불륜으로 뒤엉킨 이야기를 통해서 ‘사랑과 결혼’의 본질을 찾는 연극 '멜로드라마'. 현실적으로 이성적인 사랑의 약속에 묶여있는 고민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한다.
“큐레이터 강유경입니다. 이 그림은 펠리시안 롭스의 1878년 작품인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입니다. 성 안토니우스가 기도를 하다가 십자가 위를 올려다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가 떨어져나가고 창녀가 그 자리에 있어요. 프로이트는 이 작품을 빌어 ‘억압된 것의 복귀’라는 개념을 설명하죠. 욕망이란,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큰 반동으로 튀어 나온다는 겁니다.”
연극 '멜로드라마'의 시작을 여는 큐레이터 강유경의 그림설명은 이 공연의 전체 주제를 관통한다. 욕망이란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큰 반동으로 튀어 나온다는 것. 하지만 단순히 ‘유혹’이라는 원초적 욕망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그 유혹을 ‘억압’하고 있는 사랑의 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과연 사랑은 의무가 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결혼, 약혼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약속된 관계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성 바깥에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사회적인 규범과 제도 아래에서 의무화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단 한 번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실수’했다고 이성적으로 이미 약속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왜 본능적인 욕망을 거부하면서까지 그 약속된 관계를 지키려하는 것일까.
어쩌면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절규했던 상우에게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정리한 은수처럼, 이성이 통제하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의무화된 사랑의 굴레 속에서 사는 철저히 이성적인 현대인들이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취지에서 이 작품이 태어났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세상 모든 러브스토리가 죽는 해피엔딩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이상, 인생의 단 한번 뿐인 ‘결혼’이라는 계약을 충만한 사랑으로 유지하는 이들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단 말인가.
의무를 벗어난 엇갈린 사랑의 작대기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연극 '멜로드라마'의 성당장면에서 줄곧 등장하는 이 노래는 결국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빈껍데기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시사한다.
부족함 없어 보이는 ‘부부’지만 이들은 결혼이라는 약속에 의해 의무적인 부부관계만을 유지할 뿐 ‘사랑’이 없는 찬일과 유경. 가족의 교통사고 트라우마로 지능장애를 앓고 있는 미현과 심장이식을 받아 발기부전이라는 면역억제제 부작용이 있는 재현. 친오빠의 심장을 이식받은 재현과의 결혼을 꿈꾸는 약혼녀 ‘소이’까지. 이 다섯은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의무적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실상 서로의 진짜 사랑은 엇갈리기만 한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