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받는 권력… 좌·우 협공의 정치풍자극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7.09.06 00:58 | 수정 : 2007.09.06 03:21

연극 ‘변’ ‘정말, 부조리하군’

어둠 속, 키스 소리와 감탄사가 난무한다. 불쑥 조명이 돌진하자 붙었던 몸을 떼며 옷매무새를 고치는 남녀들. 남자들은 지방 공무원이요, 여자들은 기생이다. 긴 탁자와 의자들, 대형 거울만 있는 무대는 꼭 단란주점 같다. 두 패거리는 신임 사또로 부임할 성균관 79학번 변학도(문성근)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비상대책회의를 연다. 공무원들은 “어차피 실세는 우리”라며 태연한 척하고, 기생들은 “우리가 실세의 배후”라고 노래한다.

이 연극 ‘변’(황지우 작·이상우 연출)은 춘향전의 남녀 주인공인 춘향과 몽룡은 등장도 안 시킨 채 변학도와 아전들, 기생들만으로 극을 굴린다. 그리고 독재 권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등산복 입고 나타난 변학도의 첫 대사는 “이 동네, 오를 산 좀 있나?”고, “너희들, 내가 그리울 거다”가 마지막 대사다. 요란하고 우스꽝스런 기생 쇼, 아전들의 호들갑은 살점일 뿐이다. 뼈대는 춘향(절대 권력)을 향한 변학도의 맹목적인 사랑,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리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독재자는 다시 돌아온다”는 우울한 각성이다. 변학도는 말한다. “슬프다, 내 거대하고 공허한 사랑! 내 사랑이 다가가면 누군가 부서지고 마는구나. 때론 나도 원치 않는 내 권력이 날 짓누른다….”

‘정말, 부조리하군’에서 황제(가운데)와 키 작은 남자가 명예로운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극단 쎄실 제공
같은 시각, 대학로 게릴라 극장에서는 또 다른 정치 풍자극 ‘정말, 부조리하군’(이윤택 작·채윤일 연출)이 동시대 관객을 만나고 있다. 좌파적인 성향의 ‘변’과 달리 우파적인 눈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풍자한다. ‘로물루스 대제’에 우리 정치 상황을 넣어 개작했고, 노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황제(최규하)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빗댄 키 작은 남자(주호수)의 대담도 들어 있다.

극중 황제는 인터넷 댓글을 올리고 기자·검사·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북녘에 쌀과 시멘트를 퍼준다. 양계(養鷄)를 좋아하는 황제는 닭마다 ‘박정희’ ‘김정일’ 같은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가장 많은 알을 낳는 닭은 ‘김정일’이다. 요즘 화제가 된 브리핑룸, 북한의 문화재 판매, 영화 ‘디 워’ 등이 언급될 때마다 객석엔 폭소가 번진다.

‘변’과 ‘정말, 부조리하군’은 똑같이 거칠다. ‘변’은 의도가 섞여 있다고 쳐도 배우들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상(像)을 왜곡하는 거울, 관객을 마주보게 앉혀놓는 설정은 좋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감춘 꼴이다. ‘정말, 부조리하군’은 좀 더 직설적이지만, 풍자에 머물고 싶어하는 작가와 공격하고 싶어하는 연출가의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정치 풍자극의 계절이 십수 년 만에 돌아왔다는 점에서는 둘 다 반갑다. 연극인들이 그 동안 정치판에 빼앗겼던 정치 드라마의 부활 선언 같다.

▶’변’은 9월 1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02)3673-5580 ‘정말, 부조리하군’은 9월 30일까지. (02)763-1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