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민표’ 해피 바이러스

  • scene PLAYBILL editor 강보라 photography 김승환

입력 : 2007.08.22 11:26

뮤지컬 '메노포즈'의 배우 홍지민

실제보다 최소 15살은 많은 폐경기 여성을 연기하기 위해 머리에 하얀 분칠을 하고 걸쭉한 사투리를 고수했다는 그녀.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가슴을 뻥 뚫어버린 화끈한 가창력의 소유자. 그러나 가까이서 본 홍지민은 무대 위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아니,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훨씬 더 젊고, 훨씬 더 예뻤다.


“처음 '메노포즈'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땐 말도 안 된다고 거절했죠. 30대인 절더러 50대 폐경기 여성을 연기하라니요!(웃음) 생각을 바꾼 건 대본을 읽고 나서예요. 나도 언젠간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녀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뮤지컬 '메노포즈'에 출연한다. 역할도 ‘전문직 여성’으로 작년과 동일하다.


'메노포즈'는 폐경기 여성들의 고민을 코믹하게 그린 뮤지컬로, 그녀는 이 작품을 위해 엄마와 시어머니로부터 폐경기 여성에 대한 이런 저런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엄마 집에 가면 겨울에도 보일러를 안 켜고 계세요. 저나 형제들은 전기세 아끼려고 그러시는 줄로만 알았죠. 근데 그게 알고 보니 너무 더워서 그러셨던 거예요. 폐경도 엄밀히 말하자면 병이나 마찬가진데,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폐경기 여성 본인조차도요. 그런 의미에서 '메노포즈'는 중년 여성 뿐 아니라 남편도 자식도 모두 봐야 하는 작품이에요.” 그녀는 자신이 실제 폐경기가 됐을 때 꼭 한 번 다시 '메노포즈'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평생 레퍼토리로 가져가고 싶은, 자신에겐 너무나 소중한 작품이라며.


홍지민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 기나긴 학력에 일단 혀를 내두르게 된다. 창원대학 유아교육과 졸업,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수석졸업,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대중문화예술학과 재학 중......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유아교육과’라는 예상 밖의 이력. “원래 유치원 교사가 꿈이었어요. 그러다 대학교 때 우연히 극단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만 무대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죠. 그때부터 생각이 많아졌어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그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유치원 교사를 선택하려는 건 아닐까.” 타고난 ‘끼’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원래부터 노래 잘하고 연기 잘하기로 유명했던 그녀는 결국 뮤지컬 배우로서 삶의 급회전을 하고 말았으니. 졸업 후 4년간 그녀는 서울예술단에 몸담으며 연기의 기초를 닦았다. 졸업 후 몇 번의 고비가 있던 것도 사실이나, 그녀는 특유의 낙천적인 마인드로 그것을 가뿐히 넘겨버리곤 했다. “예술단 생활 끝내고 1년 반 동안 가수 준비를 했었어요. 그런데 중간에 제가 소속돼 있던 음반사가 망해 버리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돼 버렸죠.(웃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연습만큼은 정말 원 없이 했으니까. 덕분에 실력도 부쩍 늘었고, 노래에 대한 나름의 철학도 생겼어요.” 실패의 쓴맛을 그녀처럼 달콤하게 여기는 배우가 또 있을까. 홍지민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어떠한 어려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강한 사고, 욕심 많은 성격과 그 욕심을 뒷받침하는 꾸준한 노력. 그런 욕심 때문에 가끔은 일이 너무 많아져서 곤혹스럽다는 그녀 앞에는 지금, '메노포즈'와 '스위니 토드'라는 두 개의 큰 산이 버티고 있다. ‘겹치기 출연만은 자제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 아래 9월부터는 '스위니 토드' 연습에만 올인할 계획이라고. “제가 보기보다 서정적인 걸 좋아해요. 정작 출연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쇼(show)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들인데도 말이죠. '스위니 토드'는 그 서정성과 쇼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된 뮤지컬이에요. 게다가 ‘러빗 부인’은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쥐고 있는 핵심적인 인물이기도 하고요. 당장 오케이 할 수밖에 없었죠. 예정돼 있던 2세 계획도 냅다 미뤄두고 말이에요. 사람들은 그거 하나 안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역할만큼은 정말 남한테 주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이러다 정말 2세는 물 건너가는 거 아닌지 몰라.(웃음)” 2세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에선 문득 새신부의 핑크빛 수줍음이 스쳐지나갔다.


홍지민은 2년 전 웨딩마치를 올렸다. 살사 바에서 춤을 추다 처음 만났다는 신랑은 그녀보다 1살 연상의 사업가. 첫 공연 날엔 시어머니와 남편이 언제나 함께 공연장을 찾아오곤 한다며 그녀는 본격적으로 신랑 자랑을 시작했다. “결혼 전엔 매사에 전전긍긍하며 살았는데 요즘은 ‘완벽한 내 편 하나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요.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도 신랑은 제 절친한 친구이자 훌륭한 조언자죠. 실제로 신랑 말 들은 것 치고 잘못된 일이 없어요. 결혼하고 모든 게 너무 잘 풀려서 저도 놀랄 지경이라니까요. 근데 저 지금 자랑하고 있는 거 맞죠?(웃음).” 너무 닭살이냐며 웃음을 터뜨리는 이 귀여운 여인네가 '메노포즈'에서 무대를 휘어잡던 그 터프한 아줌마라니, 정말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그녀가 아닐 수 없다.


“전 언제나 행복을 추구해요. 우울한 거, 싸우는 거, 분위기 이상한 거, 정말 싫어요. 제가 있는 공간은 무조건 즐거워야 해요.(웃음) 저한텐 올해가 삼재(三災)라는데 전 왜 이렇게 매사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지 모르겠어요. 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그런 거겠죠.” 내 노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노래할 무대가 있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는 그녀. 삼재가 대수랴. 웬만한 재난은 ‘홍지민표’ 해피 바이러스에 맥도 못 추고 저 멀리 도망가 버릴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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