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그녀의 손끝에서 피어난다

  • scene PLAYBILL editor 김민주

입력 : 2007.08.21 08:54

뮤지컬 '대장금'

장금, 그녀는 절망을 발 아래 두고 눈물을 속 깊이 삼킬 줄 안다. 화살 한 촉에 목숨 잃은 어머니를 제 품에서 거둬야했던 어린 장금은 악착같이 삶을 부여잡는다. 천부적인 미각을 지닌 수라간의 궁녀에서 말똥이나 치우는 제주 섬의 관비로, 분노를 이겨내려 움켜쥔 날카로운 침으로 비루한 백성들의 육신과 영혼까지 치유한 그녀. 천민 출신으로 임금의 육체를 보살피는 어의 자리에까지 오른 장금에게는 한순간도 평온했던 시절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고단한 생애를 그윽한 해풍 너머로 날려 보내고, 평생의 정인과 꽃비에 적셔진 채 사랑의 유배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은 깊은 안도를 자아낸다.


그녀, 태어나다

희미한 묵향(墨香)이 감도는 중종실록의 한 면엔“내 병에 대해선 장금만큼 아는 이가 없다”라는 선명한 자국이 남아있었다. 고서를 뒤적이던 TV연출가는 이 짤막한 글귀를 무려 54부작의 장편 드라마로 제작했고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한 드라마는 종영 이후 해외 각지로 인기리에 판매되었고, 2007년 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2시간 30분짜리 뮤지컬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단아한 빛깔의 한복을 차려입은 김소현, 안유진, 최보영이 그려낸 장금, 그녀들의 화사한 웃음과 분주한 발걸음이 여름 향기 너머로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녀, 뛰어들다

드라마 속 이영애가 그려내는 장금은 또렷한 눈매로 궁중음식의 조리법이나 생소한 한약재들을 막힘없이 읊어대는 영리하고 진지한 캐릭터이다. 하지만 무대 위 장금은 이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빈틈없이 쏟아내는 민첩하고 발랄한 여성이다.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진 뽀얀 진(밀)가루 대신 배추로 만두를 빚어내고 백성이 먹는 음식으로는 채소가 더 적합하다고 중전에게 또박또박 말한다. 또한 역병에 걸려 몰살 위기에 놓인 마을로 들어가 돌림병이 아니라며 필사적으로 해독제를 만들어 민중을 구해내기도 한다. 극한의 상황에 놓일수록 기지를 발휘하여 모든 상황을 막힘없이 해결해가는 그녀의 고공질주가 다소 얄미워도 어쩌겠는가. 54부에 달하는 대서사극을 150분 안에 완성시키려다보니 하릴없이 축약의 언어를 택해야만 했으니. 이런 촉박한 전개 또한 장금이의 인생이 궤적과 무척이나 닮은 것이라 다소 유연한 이해를 택해보는 건 어떨까.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