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은세계’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7.07.19 00:27

정동극장, 내년 한국 연극 100주년 맞아 복원 공연
원각사서 공연된 최초 신극 전시회·학술대회도 추진중

1908년 11월 15일 원각사(圓覺寺·서울 새문안교회 자리에 있던 서양식 극장)에서 공연된 한국 최초의 신극 ‘은세계(銀世界)’가 100년 만에 복원된다. 원각사의 후신으로 1995년 문을 연 정동극장(극장장 최태지)은 18일 “이 작품을 기점으로 한국연극 100주년이 되는 내년 11월 15~30일 ‘은세계’를 공연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동극장은 이달 말까지 연극학자들을 중심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 ▲공연 형식 ▲스태프 구성 ▲부대사업 등 구체적인 복원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은세계’는 1880년대 원주 감사(수구파)의 폭정에 숨진 최병도(崔秉陶·개화파)라는 실존 인물이 주인공으로, 초연 당시 창극(唱劇) 형태였다. 전반부는 강원도에서 불리던 ‘최병두 타령’을 바탕으로 한 그 사건의 회고이며(타령에서 이름은 최병도가 아니라 최병두로 바뀌었다), 소설가 이인직이 신소설체로 쓴 후반부는 최병도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픽션으로 짜여 있다. 내년 복원 공연 자문위원을 맡은 서연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은세계’는 광대(창부)들이 올린 최초의 창작이었고, 당시 민중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며 “이번 복원은 한국 연극의 시작을 복원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연극협회 주최로 올라간 연극‘은세계’. 내년에는 원각사의 후신인 정동극장이 복원해 공연한다. /조선일보DB

정동극장은 ‘은세계’를 내년 가장 큰 기획공연(예산 5억원)으로 추진하고 있다. 연극뿐 아니라 음악·춤·건축 등 모든 공연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자문위원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2008년은 1908년 7월 개관해 1914년 불타 없어진 원각사 100주년이기도 하다. 정동극장 측은 “부대행사로 판소리·춤 등의 최고 광대들을 한 무대에 세우는 명인전, 김창환 명창(‘은세계’ 초연 당시 주인공) 전시회, 학술대회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복원의 기본 뼈대는 이인직의 친일 의식을 드러낸 원작 후반부는 빼고 전반부인 ‘최병두 타령’에 집중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연극평론가 유민영씨는 “‘은세계’는 대본이 남아 있지 않고 광복 이후 거의 공연되지 않았지만, 소설이 사실상 대본이라서 복원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 장르로는 창극·뮤지컬·연극 등이 모두 검토되고 있다. 서연호 교수는 “새로운 의미의 개화나 진보는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문제를 담아 재구성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내년에는 정동극장의 ‘은세계’ 복원 외에도 연극협회의 한국연극 100주년 기념공연, 명동예술극장(옛 명동국립극장) 재개관 축제, 국립극장의 ‘사투리 연극제’ 등 특별한 공연과 기념행사들이 예정돼 있다.


은세계·원각사 


신연극 ‘은세계’는 1908년 11월 15일부터 원각사에서 보름 가량 공연됐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창작 창극이었다. 전남 나주 출신으로 임방울 명창의 외삼촌인 김창환(1854~1927)이 주인공을 맡았고, 전남 무안 출신 명창인 강용환(1865~1938)이 연출했다. 원각사는 황실에서 설립한 관립 극장인 협률사(1902~1906)를 이인직 등이 임대·개보수한 원뿔형 극장이었고, ‘은세계’가 개관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