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뮤지컬 '대장금'의 장금이 김소현

  • 서일호 기자
  • 성연호 인턴기자

입력 : 2007.07.07 06:22 | 수정 : 2007.07.08 16:46

"다섯살때도 동요 대신 성악곡 흥얼거려"
"드라마보다 강한 장금이 보여줄 것…"
<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63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안방극장에서는 ‘대장금’이 이영애이지만, 뮤지컬 무대에서는 김소현(30)이다. 지난 6월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을 마친 뮤지컬 ‘대장금’은 곧 대구(7월 10~22일 대구 오페라하우스)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8월 25일~9월 5일 세종문회회관)로 올라온다. 내년 4월에는 중국 베이징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대장금’은 ‘명성황후’를 잇는 국산 뮤지컬이기에 칭찬과 질타를 동시에 받았는데, 그 중심에는 장금이 역을 맡은 김소현이 있다.


지난 7월 3일 서울 약수동에 있는 연습실에서 김소현을 만났다. 극중 우는 장면을 연습하던 그녀는 인터뷰를 위해 원피스로 갈아입고 나타났는데,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신이 대장금 역에 선발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TV드라마 ‘대장금’을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다 봤어요. 사실 팬의 입장에서 너무 좋아해서 뮤지컬 ‘대장금’ 오디션 공고를 보고도 감히 참가해볼 생각조차 못했죠. 마감일이 거의 다 돼서 겨우 원서를 냈어요. 막상 오디션에 임하다 보니 장금이와 제 성격이 많이 닮았더라고요. 밝고 긍정적이며 성공에 대한 열정이 강하죠. 그래서 뽑힌 것 같아요. 연출 선생님께서도 원래 제 모습대로 연기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세요.”

뮤지컬 '대장금'을 공연중인 김소현
 

제작사인 PMC프로덕션(대표 송승환)은 2006년 9월부터 한 달 이상 전국적으로 공개 오디션을 개최했다. 이 오디션에는 10대 학생부터 6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1200여명이 참가했다. 장금 역에는 김소현을 중심으로, ‘지하철 1호선’의 안유진, ‘사랑은 비를 타고’의 최보영이 캐스팅됐다.


배우 이영애가 대장금이라는 이미지를 워낙 잘 만들어놓아서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는 어떤 장금이를 구현하려고 하나요.


 “저는 또 다른 장금이를 만들어낼 겁니다. 이영애 선배는 부드러움 속에서 강한 면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좀 더 강한 장금이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54부작 드라마를 2시간40분에 축약해야 하니까요. 아시다시피 장금이는 꿈이 많은 아이입니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아이죠. 저는 당분간 장금이로 살아가는 꿈을 꾸려고 합니다.”


지난 5월 서울 예술의전당 초연 때 이영애·지진희·여운계 등 드라마 ‘대장금’팀이 관람을 했는데 반응은 어땠나요.


 “대장금 팀의 반응은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혹평을 했죠. 제작비가 60억원이나 들었기에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혹평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지만 저희 팀은 다시 일어나 수정, 보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관객이 열광하는 ‘오페라의 유령’ ‘캣츠’ ‘맘마미아’ 등 라이선스 뮤지컬도 오랜 세월 동안 수정, 보완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 것이잖아요.”

대학에서는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음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였죠. 호호. 어머니가 성악을 하셨거든요. 어머니는 석사과정 졸업 독창회 때 배에 너무 힘을 주셨는지 그날 저를 출산해버렸어요. 예정일보다 1개월이나 먼저 태어난 거예요. 자라면서는 성악보다 바이올린을 먼저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고3때 어머니가 오페라 ‘라보엠’ CD를 선물해주셨는데, 곡이 너무 좋아서 성악으로 전향했고 대학도 성악과(서울대)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라보엠’으로 무대 데뷔를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서울예고, 선화예고 등에서 성악 교육을 하고 있던 터라 김소현은 일찍부터 성악 입시곡을 접할 수 있었다. 5세 때부터 입시곡을 흥얼거릴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부모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나서 자녀들을 많이 낳아 모두 음악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2녀1남 중 장녀인 김소현은 하이 소프라노, 여동생은 알토, 어머니는 메조 소프라노이다.


영어를 잘 하는 뮤지컬 배우로도 알려져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가서 2년간 살았어요. 전교생 중에 아시아 여자아이는 저 혼자밖에 없었어요. 당시 일본 남자아이가 되지도 않는 영어로 한국을 무시해서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죠. 또 미국 국기에 대한 맹세는 절대로 하지 않았어요. 어렸지만 애국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미국 생활 덕분에 영어를 잘 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입니까.


 “중3때 예고 진학을 생각했는데, 오른팔을 다쳐서 바이올린을 켤 수가 없었어요. 창문을 닫다가 그만 유리가 깨져 팔목에 박혔거든요. 사춘기 때였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께서는 바이올린 연주를 못 하게 되면 노래를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씀해주셨어요. 


김소현은 내게 오른팔을 내밀어 상처를 보여줬다. 만져보니 손가락 끝이 무척 깊이 들어갔다. “이 정도만 해도 다행스럽지 않아요. 지금은 괜찮아요.”


정말 명랑한 성격을 지닌 그녀는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다시 1년 정도 미국에서 생활했다. 현지 대학원에도 합격했으나 아버지가 객지에서 고생을 시킬 수 없다면서 만류했다. 결국 김소현은 한국으로 돌아왔고 1년 정도 음악을 쉬면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성악가가 돼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서는 꿈을 지워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서울대 성악과 대학원에 들어갔죠. 다시 노래를 부르게 돼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엔 성악가가 아닌 뮤지컬 배우가 됐잖아요. “뮤지컬에 대해서 잘 모를 때였는데 외국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는 선배가 오디션에 한번 나가보라고 했어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죠. 당시 그 작품이 그렇게나 대단한 작품인 줄 몰랐어요. 무식해서 용감했나 봐요. 그런데 합격했고 공연을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2002년 월드컵 때에는 관객과 하나가 돼서 ‘대~한민국’도 함께 외쳤어요. 뮤지컬의 매력을 점점 더 강하게 느끼게 됐죠.”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크리스틴 역으로 뮤지컬을 시작한 김소현은 이후 ‘지킬 앤 하이드’ ‘아가씨와 건달들’ ‘사랑은 비를 타고’ ‘브루클린’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 잇따라 출연하며 한국 뮤지컬 부흥의 주역이 됐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하잖아요. ‘오페라의 유령’이 제 인생의 첫 번째 기회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은 소현씨가 지닌 스타성을 모두 발휘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출연작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편입니다.


 “사실 저도 그게 고민이에요. 배우로서 제 컬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상대역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의식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는 누구입니까. “윤복희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은 무대 위에 서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도 그 존재감이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저와는 싸이월드 미니홈피 ‘일촌’일 정도로 개인적으로 친하게 됐어요. 서로 비밀 이야기도 많이 해요. 호호. 그리고 ‘대장금’을 함께 공연 중인 이태원 언니도 너무 좋아요. 성악과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8월에는 TV에도 출연하는데,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다음주부터 SBS TV 사극 ‘왕과 나’ 촬영에 들어갑니다. 극중 김처선(오만석)의 원수이자 내시부 수장인 조치겸(전광렬)의 아내 정씨 부인 역을 맡았어요. 그리고 조광화 선생님이 쓰신 ‘미친 키스’라는 연극에도 출연합니다. 오늘도 뮤지컬 연습 마치고 밤 10시에는 연극 연습을 하러 가야 해요. 또 내일 아침에는 드라마를 위해 판소리 레슨을 받죠. 제가 너무 욕심이 많다고요? (옆에 있는 송승환 대표를 보면서) 그래도 제 생활의 중심은 뮤지컬이에요. 하하.”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