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7.04 11:38
<연인들의 유토피아>라는 제목에서 얼핏 식상함을 느낀다. ‘흔해 빠진’ 사랑이야기가 또 등장한 듯 보이기 때문에. 그런데 잠깐, 무대 위에 울리는 대사를 들어보자. “그런 생각 한 적 있었어. 나한테 만일 이런 일이 생긴다면, 물론 절대로 이런 일 없을 줄로만 알았지만, 혹시라도 생긴다면 난 어떻게 할까?” 조금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일이기에? 알아본 바 이 연극, 두 쌍의 부부가 등장하지만 정작 나오는 사랑의 유형은 세 가지란다. 솔깃해졌다면 이제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네 남녀의 목소리에.
한 쌍의 남녀가 등장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보낸 메일 봤어… 사랑한다고 써져 있더라.” ‘여자’의 말을 들어보면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듯하다. ‘여자’와 같이 등장하는 ‘남자’는 멍하니 중얼거린다. “우리, 무엇으로 이 긴 세월을 살아 온 걸까?” 결혼생활의 권태로움에 질식된 남자가 여자 몰래 외도를 한다고 관객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또 한 쌍의 남녀가 등장한다. 가난한 부부가 되는 상상을 하며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다. 그들의 밝은 모습을 보는 관객들은 곧 다가올 행복을 예감하는데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당신은 또 하나의 세상인거야, 유토피아처럼”이라고 속삭이는 ‘그’를 밀어내는 ‘그녀’의 말. “유토피아? 그건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인데….”
이 두 쌍의 남녀는 각각 번갈아가면서 등장한다. 같이 손을 맞잡으며 웃는 그와 그녀의 무대는 유연하다. 반면 남자와 여자의 무대는 어딘가 이상하다. 대화는 겉돌고 있으며 무대에 등장하는 둘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다분히 파편적으로 보이는 이 구성은 사실 연출가의 의도된 장치. 네 명의 남녀가 모두 등장하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관객들은 얼얼함을 느낀다.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것도 세게.
사랑이 조각나도,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간다…
어쩔 수 없다 누구나 고독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위로 받고 상대방을 의지하면서, 그렇게 유연하게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과연 소통의 기적은 있을까? 마지막 무대 위에 등장하는 네 남녀 중 누구도 행복해보이지 않는데. 각각 다른 결말을 맞는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자신 몫의 외로움을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래서 <연인들의 유토피아>가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은 ‘흔한’ 사랑 이야기를 ‘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극이 내세우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도구는 결국 ‘소통의 불가능함’을 아프게 묻는 매개체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이 질문을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외로움을 곰곰이, 곰곰이.
남편은 연출, 아내는 주연배우?
좋겠다. 남편은 연출, 아내는 주연배우라. <연인들의 유토피아>의 연출을 맡은 김진만과 그 연극의 주연배우인 전현아는 서로 부부다. 그것도 연극계의 대표적 ‘잉꼬 커플’이란다. 그들은 연습 시작과 동시에 임신소식을 듣고 “조짐이 좋다”며 기뻐하기도 했다고.
둘이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8년 <땅 끝에 서면 바다가 보인다>로 처음 만난 그들은 2002년 결혼 이후에도 <당신 안녕>, <상당한 가족>, <가스등> 등 5편의 연극에서 연출자와 배우로, 혹은 동료 배우로 함께 출연했다. 그래서 <연인들의 유토피아>는 두 사람의 6번째 공동작품인 셈이다.
김진만은 TV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아역 배우 출신의 배우 겸 연출가. 명배우 전무송의 딸인 전현아는 탄탄한 연기력을 앞세워 브라운관과 무대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다. 그래서 또 바란다. 연극과는 달리,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이 부부의 여정이 부디 슬프지 않기를.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