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7.03 16:43

누군가 묻는다. “잘 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제 막 대렴을 마친 (연극쟁이) 유순웅이 이야기한다. 잘 사는 게 곧 잘 죽는 방법이라고. “삶이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처럼 모든 변화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보태져서 이루어지는 법이여. 죽는 거 무서워들 말어.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들어. 죽는다는 것은 생명이 끝나는 거지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닌 거 같거든..." 자신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이들에게 망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듯 정성으로 입관을 준비하는 그의 손끝에서 먼저 보낸 이를 떠올린다. 생의 마지막 염을 하는 염쟁이의 회고담에 눈에선 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데 입가엔 미소가 번지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충북 청주에서 20년간 마당극 배우로 활동하던 유순웅의 서울살이가 다시 시작됐다. 2006년 국립극장에서 열렸던 ‘시선집중 배우전’ 이후 앙코르에 앙코르를 거듭하며 있는 연극 <염쟁이 유씨>가 그를 대학로에 붙들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서울 공연을 마치고 바로 지방공연을 가느라 보름도 못 쉬었어요. 힘들고 외로울 때가 많죠. 다른 배우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웃음) 그래서 더블캐스트 얘기도 나왔었지만 <빨간 피터의 고백>처럼 한 사람이 강하게 각인된 작품을 다른 사람이 하면 아무리 잘해도 비교의 접점이 생기지 싶어서 말았어요.” 불이 꺼진 무대 위에 세상을 떠난 이를 곱게 단장해주던 베테랑 염쟁이 유씨는 온데간데 없다. 분장이 필요 없게 주인공의 나이가 될 때까지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연극쟁이 유씨가 있을 뿐.
배우 유순웅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가 죽기 전까진 타인에 의해 올려 지지 않을 특별한 일인극인 <염쟁이 유씨>는 전통적인 장례의식의 절차인 염의 과정을 통해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라는 쉽고도 어려운 문제를 풀어낸다. “염은 결국 가족들을 위로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2년이 지났는데 그때 염하는 걸 보며 ‘우리 아버지 편하게 곱게 가시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작품을 위해 염을 배우면서 그때 생각이 너무 생생하게 나더라고요. 그래서 쉽게 배울 수 있었죠. 특히 대렴 하는 과정은 정말 아름다워서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니까 본 공연 때는 무리였어요. 공연 때 하는 염은 극히 일부분이에요. 실제 염을 하라고 하면 못하죠. 하하.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이 작품을 올려보고 싶기도 해요.”
극은 유순웅의 모노드라마이지만 관객들은 연극을 보는 동안 구경꾼으로서만이 아니라, 문상객으로 혹은 망자의 친지로 자연스럽게 극에 동참하게 된다. 낯선 이웃의 죽음 앞에서도 고인의 명복을 빌던 조상들의 미덕처럼, 망자를 위해 곡을 하고, 상주를 위해 상갓집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것. 관, 수의, 칠성판, 부적 등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꺼려하는 소품들이 공연을 마칠 즘엔 성스러워 보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모든 걸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유순웅이란 배우가 있다. 공연이 끝나면 허리춤까지 땀에 젖는 게 일상인 그는 돌아가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거른 적이 없다.
그렇게라도 관객과의 거리가 더 좁혀진다면 바랄게 없다며. “사실 공연이 끝나면 허전해요. 누군가 말을 걸어주고 저도 말을 하다보면 오히려 휴식이 되더라고요. 저는 오랫동안 마당극을 해왔으니 관객과 호흡하는 연극에 강할 수밖에요. 함께 극을 끌어갈 극 중 기자가 될 관객이나 가족을 재연할 관객 등 그 날 그 날마다 도움을 받아야 하죠. 거기서 관객들이 나름의 재미를 찾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색하고 부끄러워하다가도 나중엔 좋은 추억 만들었다며 인사를 하고 나가거든요.” 기본 설정부터 참여하는 연극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염쟁이 유씨>지만 공연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보강되었다. 관객들에게 술 따라 주는 장면도 빨라진 호흡을 가다듬을 타이밍이 필요해서 나중에 연출된 것이다. 그렇게 유순웅이 염쟁이 유씨로 살아온 날들을 곱씹다 보니 날을 새고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 많은 특별한 관객들이 화두에 올랐다.
“더러는 부의함에 돈 넣고 간 분들도 계세요. 나이 드신 분들은 공연 중에 제가 염하는 것 보고 그거 틀렸다며 훈수를 놓기도 하시고요. 어떤 분은 90분 내내 맨 앞자리에서 인상 쓰고 보시다가 ‘잘봤습니다’ 한 마디를 던지고 나가더니 며칠 지나서 한 열분을 끌고 다시 오신적도 있어요. 또 한 번은 공연이 끝났는데 여성 한 분이 남편 49제를 막 끝내고 왔다며 제 손을 잡고 펑펑 우시는 거예요. 너무 힘들었었는데 이 공연을 보면서 얼마나 위로 받았는지 모른다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번 이런 감정 느껴보는 것도 좋지’ 정도겠지만 죽음을 가까이서 접해본 사람은 공연을 깊게 보시거든요.”
이 작품을 통해 만난 모든 만남이 복이라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유순웅. 처음 청주에서 올라왔을 때만 해도 이 작품이 이렇게 성공을 거두리라 생각지 못했었다. 100편이 넘는 연극이 대학로에 올라가도 1년 이상 롱런 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에. 하물며 지방에서 올라온 작품의 성공 앞에 그는 감회가 남다르다. “충북 민예총 사무처장 일을 함께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두 번 업무처리 및 회의를 하러 내려가는 데 그날이 배우들이 쉬는 월요일이죠. 벅차지만 지역 일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20년간 활동 한 지역과 제가 몸담고 있는 극단 ‘예술공장 두레’는 제 바탕이니까요. 또 지역문화가 살아야 우리나라 전체의 문화가 사는 게 아닐까요. 오리지널 팀의 내한공연도 좋지만 조금 덜 만들어졌고 덜 화려해도 우리 것을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산 사람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죽은 사람에게도 정성을 다하는 염쟁이처럼 그곳이 영안실이든 병원 마당이든 백화점이든 이 공연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는 유순웅. 이 작품이 필요하고 위로 받을 이가 있는 곳에서 이 공연도 가치를 더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곳이 배우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겠냐며 빙그레 웃으며 돌아서는 그는 애초에 던졌던 질문인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의 해답을 이미 찾은 것 같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