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놀이 달인’ 중국에 삼국지 되팔다

  • 난징=글·사진 박돈규 기자

입력 : 2007.06.26 00:01 | 수정 : 2007.06.26 03:11

연출가 손진책, 로열티 받고 난징서 ‘삼국지·吳’ 초연
번화가 광장에 세운 야외무대에 코흘리개서 노인까지 수백명 몰려
앞으로 1000여차례 순회공연 계획

중국에 온 연출가 손진책(60) 앞에는 땀에 전 손수건, 물통, 시계, 마이크, 연출노트와 볼펜이 놓여 있었다. 땡볕이 물러간 오후 7시에도 난징(南京)은 후텁지근했다. 시내 번화가인 신청시(新城市)광장에 올린 가설 무대에서는 최종 리허설이 한창이었고, 코흘리개부터 노파까지 수백 명의 행인들은 더위도 귀가도 잊은 채 한국에서 온 ‘삼국지·오(三國志·吳)’에 붙잡혀 있었다. 25일 초연을 앞두고 연출가가 연출노트에 갈겨쓴 글씨들은 이랬다.

“말머리 방향 바꿔라. 좌우 관객 의식해야” “장비, 모자 눌러 깊이 써라”…. 손진책은 “노래·춤·배역 등 어느 한 분야만 잘하면 그만이었던 중국 배우들이나 나나 이번 합작으로 체중깨나 빠졌다”며 “연출 노트는 공연 마지막 날까지 쓸 만큼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 세계 무대에서 보편성을 얻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는 연출가 손진책. 배경에‘삼국지·오’의 중국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보인다.

손진책은 이날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삼국지를 처음 선보였다. 그가 연출한 마당놀이 ‘삼국지’(2004년 초연)가 삼국지 본고장 중국으로 역수출된 것이다. ‘삼국지·오’는 연출·대본(배삼식)·음악(박범훈)·안무(국수호)·무대(박동우)·조명(김창기) 등 핵심 스태프를 한국이 맡은 광장극으로 장쑤성(江蘇省)연예집단이 제작한다. 중국의 거대 공연단체로 꼽히는 장쑤성연예집단의 9개 예술단체 중 가극단·경극단·무용단 등에서 선발된 배우 43명이 출연하고 있다. 손진책은 “마당놀이가 나라 밖에서도 통하는 연극 자산으로 평가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진책아, 너 마당놀이 그만하고 이제 예술해야지’ 하셨던 연극계 어르신들이 많았어요. 그런 대접 받았지만 마당놀이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공연과 달리 마당놀이엔 서민들이 찾아온다는 게 내 자긍심이었어요.”

1981년 ‘허생전’으로 출발한 마당놀이는 26년간 해마다 10만~20만명의 유료 관객을 모으고 있다. 손진책이 대표를 맡고 있는 극단 미추는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에 이어 적벽가를 바탕으로 마당놀이 ‘삼국지’를 만들면서 판소리 다섯마당을 모두 마당놀이로 완성했다. ‘삼국지·오’는 앞으로 1000회가량의 장쑤성 순회공연을 비롯해 베이징과 상하이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손진책은 “장쑤성연예집단은 ‘삼국지·촉’ ‘삼국지·위’ 제작도 검토하고 있다. ‘삼국지·오’로 중국으로부터 계속 로열티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난징에는 ‘광장극’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중국인들은 마당놀이가 중국엔 없는 현대적인 가무극이라는 점, 배우와 관객이 트인 공간에서 뒤섞인다는 점에 관심이 많았다. 장쑤성이 과거 오나라 지역이라서 주유와 손권 등 오나라 인물들을 중심으로 ‘삼국지·오’를 만들었다는 연출가는 “이곳 관객들은 마당놀이를 낯설어하면서도 즐긴다. 한국에서 처음 마당놀이를 할 때도 ‘집에 돌아가서 더 크게 웃었다’는 관객이 많았다”고 했다.

손진책은 7월엔 일본으로 건너가야 한다. 9월 20~23일 도쿄에서 현지 극단이 올리는 연극 ‘맥베스’의 연출을 맡아서다. 그는 “중국이나 일본엔 새것, 새 공연에 대한 욕망이 크지 않다. 자기들이 가꿔온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긴다. 어렵게 만들고도 쉽게 버리는 우리 제작 풍토, 관객 취향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