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6.25 09:03
연극 <칠수와 만수>
2007년의 서울, 한 고층빌딩에 매달린 ‘곤돌라’ 위. 그곳에 칠수와 만수가 있다. 익살스러운 칠수와 묵묵히 일만 하려 하는 만수가. 성격은 꽤 다르지만 아무도 둘을 구분해서 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옥외광고의 일부인, 여자모델의 가슴을 하루 종일 그리고 있는 둘은 타인들이 보기에 ‘뺑기쟁이’일 뿐일 테니까.
마냥 즐기던 관객들은 차츰 아픔에 공감하게 되고
86년 초연된 <칠수와 만수>를 2007년 다시 무대로 불러들인 유연수 연출가에게는 ‘20년의 세월이 바꿔놓은 정서를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가 관건이었을 것이다. 현실정치를 풍자하는 대목을 곳곳에 삽입하는 등 정교한 구성으로 연극은 이 시대 관객들에게 소통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이 관객들을 흔들 수 있는 이유는, 원작이 그려냈던 사회적 모순들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지촌에서 태어난 칠수와 가난한 농촌 출신의 만수. “파스 값이 생활비보다 더 나온다”며 익살을 부릴 때 마냥 즐기던 관객들은, 그들이 빌딩 아래를 내려다보며 “저 많은 집들 중에 왜 우리 집은 없을까?”하고 뇌까릴 때 원작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읽어내기 시작한다. 무대 위 칠수와 만수가 보여주는 놀라운 리얼리티를 통해, 여전히 사회의 변방에 위치한 이들은 고통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칠수와 만수>는 알려주고 있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마지막 빌딩의 불빛
하루일과를 마치고 옥상의 철탑으로 올라가 잠깐의 자유를 만끽하는 둘은 실수로 페인트 통을 떨어트리는데, 그때부터 일어나는 혼란을 통해 연극은 미디어와 공권력이 그들을 ‘동반자살’로 내모는 광경을 보여준다. 결국 그들이 빌딩에서 뛰어내린 후, 암전된 무대에 비치는 빌딩의 불빛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 빛이 닿지 않는 많은 곳, 수많은 ‘칠수와 만수’가 현존하고 있기에.
창작극을 활성화시킨 든든한 친구, 극단 연우무대
<칠수와 만수>는 극단 연우무대의 30주년 기념공연이다. 극단 연우무대는 1977년 서울대 문리대의 창작희곡 읽기 모임으로 출발, 국내 연극계에 창작극 활성화의 바람을 불어넣은 연극계의 대표적인 극단이다. 창작극의 불모시대였던 창단 당시 연우무대는 ‘창작극만 공연하겠다’는 선언을 하며 창작극 개발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창작연구발표 25회를 비롯해 정기공연 55작품, 특별기획공연 13회, 가족극장 7작품 등을 배출했다.
극단 연우무대는 주로 숨 막히는 현실에 메스를 들이대는 사회풍자 창작극을 만들어냈는데, <칠수와 만수>와 더불어 <한씨연대기>, <새들로 세상을 뜨는구나>, <살아있는 이중생각하>, <김치국씨 환장하다>, 그리고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날보러와요> 등이 이 극단에서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작년 한국뮤지컬대상을 수상한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뮤지컬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문성근, 강신일, 송강호, 유오성, 김뢰하 등 여러 유명배우들을 배출한 연우무대의 극단 이름은 ‘연극을 하는 친구들’이란 뜻이다.
웃음 가득 섞인 풍자, 영화 <줄 위의 종달새>
<칠수와 만수>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처음에 깔깔대며 웃다가, 점차 그들의 아픔에 젖어들며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체코 영화가 있다. 68년에 만들어진 이리 멘젤 감독의 <줄 위의 종달새>는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짓밟혀진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런데 그 비판의 무기는 유머다. 한없이 비극적인 상황에 놓인 이들의 모습을 한없이 유쾌하게 그린 이 영화는 또한 ‘옛날 영화’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신선하다.
쓸모없는 폐철들을 모아 녹인 뒤 강철로 만들어내는 ‘폐철처리장’이 영화의 배경이다. 부르주아로 낙인찍힌 이들이 ‘정신개조’를 위한 노역에 종사하고 있다. 서구의 문학책을 태우는 것을 거부해 끌려온 교수도 있고, ‘자본주의의 악기’인 색소폰을 연주한 음악가와 종교적인 이유로 토요일 출근을 거부한 요리사도 있다. 사회와 격리돼 강제노동을 한다는 비극적인 상황을 그러나 영화는 유쾌하게 비꼰다. 강제로 끌려온 이들이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사상연극’을 연습하는 과정은 우스꽝스럽고, 카메라는 그들을 관리하는 간수와 관리자의 위선적인 모습을 담아내며 비웃는다.
또한 <줄 위의 종달새>는 암울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시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그린다. 노동하는 남자들은 체코를 탈출하다 잡혀온 여죄수들과 사랑에 빠지는데, 요리사 ‘파벨’과 여죄수 ‘이트카’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전개된다. 감시를 피해 사랑을 싹틔우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억압과 폭력으로도 인간의 사랑과 희망을 앗아가지는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결혼에 이르게 된 둘의 행복이 폭압적인 정권으로 유예되는 장면을 통해, 폭압적인 정권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피하지 않는다. 결국 이 영화는 이념으로 인해 ‘먹고, 마시고, 싸는’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이 사라지는 현실을 웃음 섞인 풍자로 안타까워하고 있는 셈이다.
공 연 명 : 연극 <칠수와 만수>
공연기간 : 3.30-7.29
공연시간 : 화-금 20:00 토 16:00 19:00 일․공휴일 15:00 18:00
공연장소 : 대학로 연우소극장
연 출 : 유연수
출 연 : 전병욱 김문성 홍성춘 권태건 나종민 설주미 윤인조
제 작 : 극단 연우무대
기 획 : (주)이다엔터테인먼트
티켓가격 : 일반 2만 5천원 대학생이하 2만원
문의예매 : 02.762.0010. www.e-e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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