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6.08 21:21
연극 <사랑과 우연의 장난>
토월정통연극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으로 선택된 연극 <사랑과 우연의 장난>이 드디어 관객을 찾는다. 남녀 사이의 아슬아슬한 감정 놀이를 논할 때면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인용되며 귀를 간질였지만 만나 볼 길 없었던 작품이 드디어 국내 최초로 관객 앞에 진면목을 드러낸다. 18세기 프랑스 정통희극을 상징하는 작가 삐에르 드 마리보 원작과 임영웅 연출, 전국환, 김석훈 등의 연기력이 만나 완벽한 삼박자의 하모니로 섬세하고 정제된 연애 감정을 본격적으로 논하게 될 이번 공연은 인간 내면의 참 모습과 귀족 사회의 위선과 허구를 예술적으로 희화하여 풍자를 곁들였던 마리보 희극의 진수와 함께 정통 연극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연애의 바이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는 희극과 비극을 막론하고 일정한 구조 안에서 소재와 인물의 약간의 변형을 거쳐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 구조의 원형을 찾아 소급해 올라가면 우리는 ‘고전’이라는 덩치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너무 많이 올라갈 것 없이 18세기에 멈춰서 본다면 단연코 마리보의 <사랑과 우연의 장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장미가 부담스럽다거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우연’이란 요소가 약간 터무니없는 것 같다며 투덜거리는 이들이 <사랑과 우연의 장난>이라는 제목을 앞에서는 솔깃해진 귀를 감출 수 없을 터인데, 이는 제목에 나열된 사랑, 우연, 장난이라는 세 단어가 극적인 재미와 더불어 사랑에 관한 현실적인 충고를 잊지 않을 것 같다는 믿음에서다.
파리에서 나고 자란 귀족 처녀 실비아는 아버지 오르공의 오랜 친구의 아들인 도랑트와 정혼하고 맞선을 본다. 예비 신랑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었던 실비아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자신의 하녀 리제트와 신분을 바꿔 그의 본심을 확인해 보는 것을 허락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 바꾸기는 신랑 측에서도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데, 도랑트가 자신의 하인 아를르캥과 신분을 바꿔 등장하는 속임수를 부리는 것. 한편 양쪽에서 일어나는 작전에 대해서는 오르공과 실비아의 오빠 마리오 만이 알고 있다. 관객들과 오르공, 마리오에게는 다행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불행으로, 아를르캥으로 분한 도랑트와 리제트로 분한 실비아는 각각 하인이라고 ‘믿고 있는’ 상대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에 괴로워하던 도랑트는 (하녀로 변장한) 실비아에게 자신의 귀족 신분을 밝히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의 진실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는 실비아, 오히려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 오빠인 마리오에게 연적(戀敵)인척 연기해 달라 요청하며 변장놀이를 연장시킨다. 그사이 리제트와 아를르캥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사랑을 고백한다. 결국 마지막 장에서 도랑트는 실비아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게 되며 이로써 사랑을 증명하는 모든 관문을 마친 도랑트와 실비아의 사랑이 마침내 이루어진다.
마리보, 그의 작품 세계와 <사랑과 우연의 장난>
1688년 파리에서 태어난 마리보는 40편의 희곡과 각종 소설을 발표하며 세밀한 풍속과 심리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프랑스 작가이다. 마리보 작품의 특징은 단연 섬세하고 활달하여 멋이 넘치는 대사인데, 일례로 볼테르는 마리보의 작품을 대단한 심리학적 섬세함을 가졌다고 평가하며 “마리보 연극의 섬세함은 거미줄로 된 저울로 잴 수 있는 파리 알 무게만큼 세밀하다”고 말한 바 있다.
마리보의 작품세계를 가로지르며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테마는 등장인물이 시련과 장애의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 찾아가는 솔직한 감정과 용기로서 완결된다. 이는 300여 년의 시간 공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사랑의 보편성을 설파하는 그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마리보 이래 그의 연애 심리희극은 오늘날까지 연극은 물론 각종 영화와 TV 드라마로 모습을 바꾸어 등장해왔다.
1730년 초연된 작가의 대표작 3막 희극 <사랑과 우연의 장난>은 사랑의 감정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연의 상황, 그리고 변장을 통한 장난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된다. 마리보의 많은 작품들이 그랬듯 <사랑과 우연의 장난> 역시 코메디아 델라르떼 형식으로 초연되었는데 코메디아 델라르떼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번성한 연극 형식으로 정교한 무대보다 거리의 임시 무대나 법정, 궁정에서 소규모로 이루어진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지나가는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관심을 가진 관객들을 공연 내내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 당시 유행하는 노래와 음악, 엇박자의 재미있는 춤사위, 재치 넘치는 대사와 유머러스한 제스처를 적절하게 사용해 희극적인 효과를 증폭시켰다.
한편 주제 면에서 본다면, 계급의 구별의 엄격했던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한 <사랑과 우연의 장난>은 우리에게 신분의 차이와 사랑에 관한 전통적인 문제의식을 던져 주는데, 이후 이 주제는 빅토르 위고 <뤼 블라스>와 스트린버그 <미스 줄리> 등의 문학작품에 차용된다. 물론 오늘날의 영화 및 드라마에서 재인용되고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사실.
마리보에 대해 이야기 하며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단어는 ‘마리보다쥬’라 불리는 그만의 독특한 언어 표현인데, 이에 앞서 이 명사 표현을 가능케 했던 동사 ‘마리보데’가 있다.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마리보하다’ 정도의 뜻의 이 동사는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사랑의 대화나 고도로 섬세한 표현을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이 동사에 근거해 명사 ‘마리보다쥬’가 등장했는데 이는 형이상학, 세속적인 어법, 과도한 기교를 부린 감정, 세간에 유행하는 화법 중 가장 미묘한 표현의 혼합체라 정의되며 당시 문학계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오늘날의 관객에게는 마리보의 문학세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특징으로 이해되고 있다.
신분 바꾸기의 전통
마리보와 시대는 달리하지만 코메디아 델라르떼의 영향을 받은 셰익스피어도 작품 안에서 등장인물의 역할 바꾸기를 시도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루첸티오가 비앙카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하인인 트래니오와 옷을 바꿔 입고 신분을 가장하는 장면을 볼 수 있으며, <뜻대로 하세요>의 올리버가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며 가난한 여인 셀리아를 선택하는데 결국 그녀가 실제로 엄청난 부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대목 또한 <사랑과 우연의 장난>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사랑과 우연의 장난>의 ‘역할 바꾸기’ 모티브는 마리보만의 독창적인 설정은 아닌데, 이는 로마의 희극 <메네콤>과 우리나라 작품 <시집가는 날>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 공연정보 ■
기 간 : 6.13 - 7.1
시 간 : 화 14:00 수-금19:30 토 15:00 19:30 일15:00
장 소 :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연 출 : 임영웅
원 작 : 피에르 드 마리보
번 역 : 오증자
출 연 : 전국환 김석훈 김태범 최규하 전진우 최광희 이민정
기획·제작 : 예술의전당
티켓가격 : R석 3만 5천원 S석 2만 5천원 A석 1만 5천원
문의예매 : 02.580.1300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