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story] 그들이 돌아왔다

  • scene PLAYBILL editor 김아형 illustration 이미연

입력 : 2007.05.14 08:48

You Must Comeback to Stage

그들이 돌아왔다.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들 ‘별들의 귀한’에 혹자는 반가움을 표하지만, 혹자는 색안경을 끼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톱배우들이 연이어 연극 무대에 돌아온 사연을 들여다본다.



“TV드라마나 영화하는 배우들이 왜 무대를 꺼리는 줄 아세요?”
이태 전 어느 밤, 동료배우 박철민의 연극을 함께 관람한 조재현이 대뜸 물었다. ‘바로바로 답을 보내오는 객석의 수십, 수백 개의 눈동자가 부담스럽기 때문이 아닐까요?’란 답을 건넸고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지……. 화면에선 배우의 일부만 노출되지만 무대 위에선 배우의 전부가 노출되잖아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엔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다른 부분은 자유로우니까요. 그 자유에 취해있다 무대로 돌아오면 자유는 구속으로 돌변하죠. 차려 자세로 서 있어야 할지 뒷짐을 져야할지 굳어버리는 거예요. 심지어 어떻게 무대를 걸어야 할지 잊어버리는 사람도 봤는걸요.”

서보지 않은 자는 알리 만무한 무대가 주는 두려움. 충분한 연습을 하기엔 너무나 촉박한 시간적 부담. 게다가 영화나 드라마에 비하면 가벼운 출연료.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2007년 대한민국의 연극 무대에 톱스타들이 줄을 이어 귀환하고 있다.



물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많은 스타배우들은 무대에 올랐다. 2005년 하반기엔 유오성과 설경구가 각자 8년, 9년 만에 <테이프>, <러브레터>로 연극 무대에 섰다. 지난해엔 문소리가 생에 첫 연극인 <슬픈 연극>에 출연했고, 김지호도 <클로져>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활동무대를 넓혔다. 그리고 올해 2007년 조재현이 <경숙이, 경숙 아버지>를 시작으로 최민식, 조민기, 유지태 등 내로라하는 남자배우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무대를 찾았다. 여기 ‘국민 어머니’ 김혜자와 고두심까지 합세해 마치 스타들의 무대 복귀는 일종의 유행이나 새로운 현상으로 비칠 정도다. 올해만큼 동시에 많은 톱스타들이 몰리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에디터의 메일박스는 뭇 연예 전문기자들의 화려한 메일 박스 부럽지 않게 톱스타들의 소식으로 넘치기 시작했다. ‘톱스타 OOO 연극 에 전격 캐스팅!’ 식의 보도 자료들이 넘치기 시작한 것이다. 자칫 유행처럼 비춰질 수 있는 스타들의 무대 진출.

진출이건 복귀건 이들의 무대 행을 쌍수 들어 환영하는 팬들도 많지만, 모두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이들의 무대 진출이 일회성 이벤트나 이미지 변신을 위한 홍보무대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가하는 의혹도 눈초리도 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서 만난 배우들은 출연 사유에 대해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길게 입장을 표명했다.



“일회성이라는 비난 보다는 연극 부흥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얼마 전 메릴 스트립이 뉴욕에서 무료 연극공연을 하는 걸 봤는데 참 부러웠어요. 그렇게 배우와 관객이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거든요.” 연극계 출신도 아니고, 따지자면 연극과는 거리가 먼 모델 출신의 유지태는 2004년 오달수와 함께 연극 <해일>에 출연한 이후로 창작 연극의 매력에 빠졌다. 원안, 제작, 배우라는 1인 3역을 하며 연극 <육분의 륙>을 성사시켰던 그는 지금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로 창작 연극을 꾸준히 하겠다던 약속을 조용히 지켜가고 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조민기도 뒤지지 않는다. “제 꿈은 <벚꽃 동산>의 피르수 할아버지 역할을 분장 없이 할 수 있는 나이까지 무대에 서는 거예요”라며, 조민기는 체호프 마니아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조민기는 ‘체호프의 가을’이란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자신이 직접 러시아 연출가를 영입하는 등 제작에 관여하여 지난 3월 <갈매기>의 뜨레고린으로 LG아트센터 무대에 섰다. 체호프의 작품을 제대로만 할 수 있다면 배우가 아니라 무대 뒷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조민기의 다짐은 실천된 경우다.

그런가하면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 이후 ‘7년 만의 연극 복귀’라는 수식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는 최민식은 <필로우맨> 출연을 앞두고 있다. ‘어디 좋은 연극 없나 내가 찾아다녔다’며 자신이 택한 작품 <필로우맨>의 연습을 앞두고 최민식은 이런 말을 했다. “매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거기 임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방법이 중요한 거죠. 연극은 연습이 전부에요. 누구나 열심히는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잘 하는 거예요. 영화에 비해 관객들이 내는 티켓가격이 결코 적지 않잖아요. 관객들은 ‘열심히’ 하는 배우가 아니라 돈이 안 아깝게 여겨질 정도로 ‘잘하는’ 배우를 만나러 극장에 오는 거죠.”

맞는 말이다. 관객 입장에서 평소 만나고 싶던 스타배우를 무대라는 공간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제안이다. 더구나 그 공간이 흐르는 땀방울 하나까지 생생히 눈에 담을 수 있는 소극장이라면 누가 그 기회를 마다하겠는가. 더 이상 아무 바람도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의 바람은 끝이 없다.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 얻은 감동, 그 이상의 감동을 원하기 때문이다.



스타들의 대학로나들이가 한창인 요즘 연극계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가 돈다. ‘유료 관객이 꽉 찼을 때 내 개런티가 500만 원’이라던 조재현의 <경숙이, 경숙 아버지>는 극장 객석이 모자라 매회 보조의자를 놓아야 했다. 김혜자가 의심 많은 수녀로 분했던 <다우트>는 초연 이후 3일 간의 연장공연도 부족해, 지속적인 관객 요청에 힘입어 3개월간의 앙코르 공연을 마련했다. 고두심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친정엄마>는 연극계에선 보기 드물게 티켓 판매 개시일에 600장의 티켓을 팔기도 했다. 그리고 연극이 시작됐을 때, 고두심의 출연분은 이미 모두 매진되었다.

이들 스타배우들로 인해 객석은 가득 차고 있다. 하지만 100%, 120% 유료관객이 는다 해도, 배우가 받는 개런티는 타 장르의 개런티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 게다가 연극은 연습기간도 길거니와 웬만해서는 공연기간 중 다른 출연이 힘들기 때문에 수입 면에서 재무제표를 따진다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톱배우들은 무대를 원한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올라 갈 곳이 없이 정상에 오른 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도 있을 것이고, 무대 위에서 생으로 자신을 던져보고 싶다는 끝없는 연기욕심도 있을 것이다.

오래전 연극 무대는 영화배우의 주요 공급처 역할을 수행해왔다. 최민식과 조재현을 비롯해 송강호, 설경구, 박해일, 오달수 등이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테고, 현재 영화 속 연기 잘한다 싶은 조연들은 연극배우가 거의 휩쓸고 있다. 하지만 최근 주연급 배우들이 속속 대학로 무대로 복귀하는 역 현상에 대해선 왜 이리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 배우가 원하고 관객이 원하는 이상 이 현상은 지속될 것이기에 얼마 후엔 별들의 귀환이 지금처럼 이슈가 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오랜만이란 인사와 왜라는 물음 앞에 우리의 배우들은 무대에서 명쾌한 답을 건넬 것이다. 여느 배우와 마찬가지로 구슬땀을 흘리며.

  • CP